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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6 조회수1,061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Woe to you, scholars of the law!
You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You yourselves did not enter
and you stopped those trying to enter.
(Lk.11,52)
 
 
제1독서 에페 1,1-10
복음 루카 11,47-54
 

어떤 본당의 신부님께서 아주 난처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신데 어느 날 신부님을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하더랍니다. 신부님께서는 성당 돈을 함부로 할 수 없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셨지요. 하지만 그분께서는 지금 너무 급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만약 돈을 구하지 못하면 성당에 다닐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이 형제님의 눈물에 마음 약해지신 신부님께서는 이제까지 열심히 봉사하셨던 형제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성당 돈을 빌려주셨지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형제님을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당연히 성당 돈도 받을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대출을 받아 성당 돈을 채워 놓았고, 현재 열심히 빚을 갚고 있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처음에 본당신자들은 신부님에 대해서 너무나도 좋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강론도 잘하시고 너무나 착하시고 신자들과도 잘 어울린다면서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돈 문제가 생기자마자 많은 신자들은 신부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만 던집니다. 강론이 별로라는 말부터 사람이 물러 터졌다는 말까지, 무엇이든 다 안 좋은 쪽으로 평가를 내리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부님께서 잘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칭찬받고 인정받아야 할 부분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면서 바라보면 안 됩니다. 또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면서 바라보아서도 안 됩니다. 순전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 주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올바른 판단과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혼을 내십니다. 왜 혼을 내실까요? 사실 이 사람들이 미워서 혼을 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정말로 보기도 싫고 어떤 말도 섞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십니까?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어떤 관심도 갖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혼을 내신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며, 이들 역시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이제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떠합니까? 복음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기준과 관점만을 내세웁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에게 구원의 큰 선물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망신과 체면만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진정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의 길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불행의 길로 가시겠습니까? 주님의 기준과 관점을 따라간다면 분명히 행복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수백 번의 이상적인 생각보다 한 번의 실행이 변화의 시작이다(셰릴 샌드버그).


 

나태함과 게으름을 날려 버려요.

얼마 전에 성당 건축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하는 신부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당 건축으로 많이 힘들지만, 어렵고 힘들수록 은총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이 말씀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어렵고 힘들 때 그 순간을 정말로 피하고 싶지만, 그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되돌아보면 은총이었음을 깨달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성당 건축을 한다고 신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건축금 독려를 말하기 시작하자, 성당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 성당이 재건축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신자들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상의 피해를 입으면서 성당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옆 다른 성당으로 미사에 참석한다고 하네요.

부담 없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어쩌면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 단체의 책임을 맡으라고 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못한다고, 만약 계속해서 자기에게 맡기겠다면 오늘부터 냉담하겠다는 말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일꾼이 없다는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이 크게 와 닿습니다. 나태하고 편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일꾼이 되는 것, 좁은 문, 십자가도 주님과 함께 라면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하긴 저 역시 편하고 쉬운 것이 좋아지는 나태함과 게으름이 고개를 들고 나오려고 함을 자주 느끼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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