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52)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방법 초기 교회에서는 서로 입을 맞추어 평화를 빌어주었습니다. 사도들도 자주 권고합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1베드 5,14). “여러분도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1코린 16,20; 로마 16,16; 1테살 5,26 참조). 신자들은 이 권고에 충실히 따라, 형식적인 포옹이나 악수 정도가 아니라 진짜 입맞춤으로 인사하였습니다. 당시에도 주로 친숙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입을 맞춰 인사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하느님 안에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이라는 사실을 몸짓으로 선포하고자 입맞춤으로 평화를 빌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예식 때는 예비 신자들을 제외한 동성(同性)의 신자들끼리 입을 맞추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동서방의 여러 전례 전통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고유한 방식을 확립해 나갑니다. 동방 예법들 가운데는 입맞춤 대신에 서로 손가락을 잡고 상대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거나, 상대의 손을 잡은 채로 자기 손에 입을 맞추는 식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로마 전례에서는 상대의 어깨에 입을 맞추거나 뺨에 입을 맞추는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570년 미사 경본에 따르면, 가슴과 가슴 사이에 적당한 공간을 두고 가볍게 포옹하며 서로의 왼뺨을 가까이 가져다 대지만 완전히 접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가 신체와 신체가 직접 만나지 않고 도구를 활용해서 평화를 전달하는 방식도 생겨났습니다. 입맞춤(osculum)을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오스쿨라토리움’(osculatorium)이라고 부르는 휴대용 판에 입을 맞추어 옆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장식된 이 판을 일반적으로 ‘평화의 도구’(instrumentum pacis)라고 불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도구를 사용하는 관습은 없어졌고, 인사의 방식은 지역 주교회의에서 그 지역의 문화와 관습에 맞게 정할 수 있게 위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가까이 있는 이들하고만 차분하게 평화의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과도한 인사 방식은 피할 것을 권고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2항). 한국 주교회의는 가벼운 절을 평화의 인사 방식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교회 전례를 주관하는 교황청 부서인 경신성사성은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주의해야 할 사례로 다음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 로마 예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평화의 노래’를 도입하는 것. - 신자들이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 위하여 자리를 이동하는 것. - 사제가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려고 제대에서 물러나는 것. - 특별한 대축일이나 예식 미사를 거행하는 동안 이 예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축하, 기원, 또는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몸짓이 성찬례의 본질을 가려버려서는 안 된다는 조심스러움이 늘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살아있는 빵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나누듯이, 평화의 ‘인사’도 먼저 주님께 평화라는 ‘은사’를 받은 다음 우리가 서로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2021년 6월 13일 연중 제11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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