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53) 빵 나눔 예식 평화의 인사를 나눈 다음 사제는 축성된 빵을 들어 성반에서 쪼개고, 작은 조각을 떼어 성작 안에 넣으며 속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따르면, 이 예식은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의 몸과 피의 일치, 곧 살아 계시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를 표현합니다(83항), 성작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일치는 그분의 부활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받아 모시는 주님의 몸과 피는 그분의 지상 육신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생살을 뜯어 먹는 ‘식인종’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는 사람입니다. 성혈이 담긴 성작에 성체의 한 조각을 섞는 예식은 한때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본래 주일 미사는 주교의 주례 아래 사제와 신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로마 교회의 구성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교가 집전하는 한 장소에서 미사를 거행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따로 성당을 지정하여 신부에게 수여한 후 그곳에 파견하여 책임지고 주일 미사를 거행하게 하였습니다. 주일에 각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사제와 교우들은 이제 한 목자 아래 이루는 생생한 일치의 표지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주일 미사를 자신과 함께 거행하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서 성찬례를 거행하는 본당 공동체들이 혹시나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한 공동체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축성한 성체 조각을 시종을 통해 본당으로 보내, 본당 사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성작 안에 담긴 성혈에 섞게 했습니다. 416년 인노첸시오 1세가 구비오(Gubbio)의 주교 데첸시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교황이 미사 중에 축성한 성체 조각을 로마 시내 각 본당에 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교회의 신부들이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신자들을 돌보느라 주일에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축성한 페르멘툼(fermentum)을 시종들을 통해 받음으로써 그날 우리 공동체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가능한 한 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성체 조각을 페르멘툼(fermentum), 곧 ‘누룩’이라고 불렀습니다. 누룩이 빵에 들어가 부풀고 풍성해지듯이, 교황이 축성한 빵 조각이 본당 사제가 집전하는 성찬례에 더해져, 비록 따로 떨어져서 주일 미사를 거행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공동체가 교황이 축성한 하나의 빵, 같은 주님의 몸으로 풍성한 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페르멘툼 예식은 고대 교회의 관습으로 그쳤으나 근본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셨듯이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영성체를 코앞에 두고 성체성사가 일치의 성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2021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