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구심점’이었다. 이 성전이 파괴되어버릴 것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이다. 이 참변은 루카 복음사가의 관점으로 보면 종말의 전조가 아니라 역사적 비극이었다. 내 삶을 보자. 내가 이룬 성공적 결과들, 부와 권세, 명예, 튼튼한 인맥 등 우리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 없다.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며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지만 그러한 것들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가 죽음의 순간을 모르거늘 찰나에 스쳐가고 먼지에 지나지 않는 생의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것들에 집착하며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우리네 삶은 건강할 때가 있으면 아플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으며, 올 때가 있으면 갈 때가 있지 않은가? 화려한 성전이 파괴되듯 우리네 삶에서도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는 많은 것들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누구든 우리 존재의 뿌리요 모든 것이신 영원하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영이 아니고서는 영이신 하느님을 보지도 만날 수도 없으며, 하느님을 뵙지 못한다면 내가 지닌 모든 것은 헛된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런 참변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묻자(21,7), 예수께서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하는 이들을 뒤 따라가지 말라고 하신다(21,8). 펠릭스 총독시대에도 이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며 약 3만명을 모았다(유다 전기 Ⅱ 13,5). 우리는 살아가면서 갑작스런 실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질병, 중대한 선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일 등을 겪는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아니 어디에 매달리는가?
기도생활을 꽤나 열심히 하는 사람,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하던 사람, 교회 안에서 각종 활동을 헌신적으로 하던 이들조차도 때로는 그런 일을 겪으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소리, 경험이 많다는 이들의 소리, 땀 흘리지 않고 단기간에 큰 수익을 올린다는 선전 등 허상을 찾아 매달리는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화려한 성전의 아름다움에 감탄만 하며 거짓 예언자를 따르고 우상을 좇고 있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을까?
예수께서는 이어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21,9) 하신다. 그렇다! 영원하신 분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네 삶은 영원성을 지닌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 어떤 일이 닥쳐와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적인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마음의 중심을 영혼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