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에는 우리가 서로 빌어주어야 할 ‘아론의 축복’이 나온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 축복은 사제들에 의해(신명 21,5) 성소에서 예배 의식에 참석하러 온 이들에게 베풀어지고(시편118,26) 또 참석자들이 나갈 때 행하여졌다(2사무 6,18). 그러나 축복문에서 주님이라는 호칭이 세 번 반복되는 데서 알 수 있듯 사제는 중개자일 뿐이며 하느님이 축복의 근원이다.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은혜와 평화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축복의 근원이신 분께서 ‘되돌아보고, 앞을 바라보는’ 새해의 이 첫 시간을 축복해주신다. 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중요한 터다. 시간을 축복해 주심은 곧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심이다. 시간의 축복은 변화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느님의 바램은 각자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변화란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내 편에서의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곧 진정한 성숙과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우리에게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되었으며(갈라 4,5),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기 때문이다(4,6). 우리가 이것을 믿고 그 축복 속에 살아간다 해도 고통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일상의 삶이 가져다주는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아빠’(Abba)라 부름으로써 그분의 선과 행복과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기에 복된 존재인 것이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축복을 사는 이들이 지닐 자세에 대해 가르친다. 목자들은 ‘베틀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고,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을 말을 알려주었으며, 자신들이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루카 2,16-18). 우리도 가난하고 소외받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서둘러 가서 찾아내고’, 그 상황을 공유하여 함께 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행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찬미 드려야 한다. 축복이란 그렇게 함께 하고 나누어질 때 참 축복이 된다.
한편 마리아는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2,19). 마리아는 하느님의 길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 모든 일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명의 씨앗으로 간직하였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시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기도도 생각도 살핌도 없이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속절없는 가벼움’을 내려놓고, 축복의 근원이자 주인이신 주님 안에서 ‘영적 숙고와 생명을 간직하는 마음’을 키워가도록 하자! 이 새해를 평화의 어머니의 따뜻한 도움을 받아 희망 속에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시작하며 더불어 복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