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Jesus rebuked him and said,
“Quiet! Come out of him!”
The unclean spirit convulsed him
and with a loud cry came out of him.
(Mk.1,25-26)
제1독서 히브 2,5-12
복음 마르 1,21ㄴ-28
20년 동안 성당에 열심히 다니셨고 또 그 누구보다도 열심 봉사 활동도 하신 형제님께서 어느 날부터 신앙생활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위의 교우들은 이 형제님께 왜 냉담을 하시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형제님께서는 “열심히 성당을 다녔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그 동안 쓸데없는 일을 한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봉사하며 수고했지만 기쁨보다는 한숨과 원망과 절망뿐이라는 것이었지요. 왜 이 형제님께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요? 바로 사랑의 결핍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했지만, 그 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낀 거죠.
이 분의 진짜 문제는 주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생활 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임을 느꼈어야 했었습니다. 사랑의 결핍은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사랑을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그 마음 안에 주님이 오시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행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5)고 물으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라고 대답하지요. 그리고 이 대답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큰 칭찬을 내리시지요. 그런데 이 대답과 다를 바 없는 대답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그런데 이 대답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명령하시며 꾸짖으시지요. 베드로의 고백과 악마의 고백이 다를 바 없는데, 왜 예수님의 반응은 정반대였을까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사랑으로 고백했고, 악마들은 두려움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단지 악마들은 사랑이 아닌 그 순간을 넘길 목적으로 진리를 말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습니다. 똑같은 고백을 했지만,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예수님의 반응은 정반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반응은 똑같은 행동을 했어도 정반대로 나올 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행동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이지요. 주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에 사랑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말과 행동에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일종의 각성이며 불빛에 녹아내리는 양초처럼 열기를 못 이겨 사라지는 그런 사랑과 달리 감싸 쥘수록 따뜻해지는 찻잔 같은 것이다(김재진).
기다리는 시간(서정홍)
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사람을 기다리다 보면
설레는 마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으면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사람을 기다려 주는 일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다음에 또 기다려 주는 일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어쩌면 이 모습이 주님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당신 곁을 떠나고 약속을 어겨도 되돌아오길 기다려 주시고, 또한 약속을 지킬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습니까?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주님도 닮을 수 있겠지요.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저는 기다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면서 짜증부터 낼 때가 많았거든요. 예수님의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우리. 기다릴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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