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극도로 절망하던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려 병을 고치고 싶은 애절한 심정에서 유다인의 규정 위반이나 수치스러움을 괘념치 않고 예수께 매달렸다. 그 여자는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5,27-29).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처럼 철저히 소외된 그 여자를 “딸아”라고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르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5,34)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옷을 만진 많은 사람 중에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진 그 여자만이 치유를 받았다(5,30-31). 그 여인의 절박하고 애절하게 간구하는 마음과 하느님의 위력을 지니신 예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전적인 의탁이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 치유를 일으켰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그토록 간곡히 청했던 회당장의 딸은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고 말씀하신다(5,36). 그분은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힌 회당장에게 하느님의 권위로 격려하시고 그의 집으로 가셨다. 사람들은 회당장의 어린 딸의 싸늘한 주검을 앞에 두고 소란스러워 했고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였다(5,38). 그런데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소녀에게 “일어나라!”하고 말씀하시어 그 아이를 소생시키셨다(5,41-42). 이 소생사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소생이적을 일으켰던 엘리야나 엘리사보다 훨씬 탁월한 분이심이 드러난다.
오늘 복음에서 믿음으로 그녀가 하혈증을 고침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회당장도 믿음으로 죽었던 딸이 ‘곧바로 일어나 걸어 다니는’ 기적을 보게 된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 듯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가 깨지고 권위가 실추되고, 인간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적 안전장치가 부실해지며, 가장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기에도 그야말로 ‘퍽퍽한’ 현실이다. 서민들의 삶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 절망적이고 마음 아픈 현실에서 하느님만이 살길이요 우리 편임을 믿도록 하자! 이 어려운 상황을 버텨 나가도록 함께 해주신 분도 주님이요, 이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도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뿐임을 명심하도록 하자! 아울러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며 탄식하던 이들의 “고통과 슬픔 중에 함께 하는 마음”과 주님을 향한 절박하고 애절한 믿음을 지니고,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내맡기며, 우리 함께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며 힘을 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