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안수의 추억
사제서품식이 끝나고 부모님과 본당 교우들이 모여 계신 성당 마당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그날은 유독 많은 교우들로 성당 마당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어떤 자매님 한 분이 불쑥 다가와 안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은 하나도 없고, 사람들에게 떠밀려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안수라니요! 게다가 서품 후 첫 안수는 아버지께 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차였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 정말 생뚱맞게 머리부터 들이대다니요! 매우 당황스럽다 못해 곤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살펴보니 그 자매님 행색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핏기 없는 얼굴, 뭔지 모를 근심이 가득한 낯빛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새 신부의 애덕과 자비심이 자연스레 발동하였고, 어느새 제 손은 그 자매님 머리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새 신부로서 제가 했던 첫 안수는 그렇게 누군지도 모를 자매님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만, 그 자매님 덕에 느낄 수 있었던 그 첫날의 연민과 동정의 마음은 지금도 제게 사랑의 전율을 전해 줍니다.
더욱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라는 대목을 발견하게 되면 그날을 떠올리며 제 마음 깊숙이 잠들어 있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일깨우게 되어 그 자매님에게 감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심합니다.
더욱 큰 사랑과 자비로 교우들을 돌보아 드리자!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눈곱만큼이라도 닮아가자! 하고 말입니다.
그대로 잘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 노성호 신부(수원교구 효명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