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자녀의 자격, 이웃 사랑 >
1999년 2월4일, 미국 링컨센터에서 인간승리의 주인공인 스테파니 바스토스(21)의 발레 공연이 열렸을 때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95년 교통사고를 당해 발목을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절망했습니다.
“나는 이제 발레리나로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내 인생은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바스토스의 곁에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의족을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딸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잃은 것은 오른쪽 발목 하나뿐이란다. 의족으로 사람들에게 멋진 춤을 보여줄 수 있겠니?”
바스토스는 어머니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힘차게 재기했습니다. 그리고 의족의 발레리나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어머니의 격려 한 마디가 ‘껍데기인생’을 ‘알곡인생’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작은 창조자입니다. 부모로부터 내어났다고만 해서 참으로 자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고 또 자녀가 당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라면 그저 사람의 자녀이겠지만, 그분을 참 부모님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분이 만드시는 모습대로 변화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부모인 하느님께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늘 독서에 자녀는 부모를 꼭 닮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아버지를 닮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해 주신 이 말씀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완전하고 거룩한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기도를 열심히 하고 더러운 것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삶일까요?
오늘 독서에서는 이것도 구체적으로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다시 말해 거룩함이나 완전함은 ‘이웃 사랑’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신 것이 바로 ‘이웃 사랑’임을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것뿐임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미사를 자주 하더라도 이웃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은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례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때의 일입니다. 루이 16세와 왕비가 시민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을 때 흥분한 군중들은 “이제 왕자도 끌어내라, 죽여야 한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어린 왕자는 여섯 살밖에 안 된 꼬마였습니다. 군중들은 “왕족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제안했습니다.
“왕자를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왕자를 천국에 보내는 것밖에 안 됩니다. 차라리 왕자를 더러운 뒷골목 늙은 마녀에게 주어 더러운 말과 행동을 배우게 합시다. 그러면 왕자가 죽어서도 지옥에 갈 것입니다.”
뒷골목의 악녀는 왕자에게 더러운 말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어린 왕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어요. 그따위 더러운 말은 할 수 없어요.”
그는 뒷골목 마녀의 자녀 밑에서 살았지만, 참으로 왕다운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녀의 아들이 아닌 임금의 아들인 것입니다.
저의 이태리어 논문을 교정해 준 ‘레티치아’ 자매님은 아무 보수도 원하지 않고 이태리어에 능통하지 못한 한국 학생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도와주셨습니다. 비록 결혼도 하지 못하고 연세도 많이 드셨지만 그 꾸부정한 허리로, 눈도 잘 보이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해 주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과 함께 일을 했지만 갈 곳이 없는 자신보다 연세가 더 든 치매가 있는 ‘체사리나’를 자신의 집에서 극진히 돌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자녀다운 우아함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웃 사랑’뿐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