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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3월 14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3 조회수52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년 3월 14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영적독서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 
 
(Oratio 14, De pauperum amore, 38.40: PG 35,907.910)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섬깁시다
 

성서는 말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자비는 '참된 행복'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복 되다, 아쉬운 이와 가난한 이를 생각해 주는 이여.", "복 되다, 인정 있고 꾸어 주는 사람, 올바로 자기 일을 처리하도다." 시편에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동정하여 빌려 주나니, 그 자손이 축복을 받으리라." 우리는 이 축복을 받아 자비로운 자라는 명예를 얻도록 자비를 베풉시다.

밤마저 여러분의 자선 행위를 막지 말아야 합니다. "가서 다시 오시오. 내일 주겠소."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자선 행위를 하려는 원의와 그 실천 사이에 어떤 장애물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선은 지체함을 허락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누어주고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십시오." 또 이 일은 기쁜 마음으로 민첩하게 하십시오. 그래서 바울로는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할 때 그 자선 행위가 가져다주는 은혜는 두 배가 됩니다. 반면에 마지못해서 슬픈 표정으로 주는 것은 달갑지 못한 일이며 칭찬할 일이 못됩니다.

자선 행위는 기쁘게 해야지 우울한 표정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억압과 차별감을 제거한다면", 즉 인색과 감시와 모호한 태도와 비평을 피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를 행하는 사람은 큰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여러분의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고 여러분의 상처는 금시 아물 것입니다." 그런데 빛과 상처가 아무는 것을 원치 않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종이요 형제며 공동 상속자들인 여러분, 내말을 들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잘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기회가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방문하여 그분을 돌보아 드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드리도록 합시다. 어떤 이들처럼 식탁에서, 마리아처럼 기름 부음으로, 아리마태아의 요셉처럼 자기 무덤을 제공하는 것으로, 또 그리스도를 반쪽만 사랑했던 니고데모처럼 장례 물건을 준비하는 것으로, 앞에 언급한 사람들 이전에 왔던 동방 박사들처럼 황금이나 유향이나 몰약으로, 우리는 이것들로만 그리스도를 대접하고 공경해서는 안됩니다.

만물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희생이 아닌 자비입니다. 자비는 수만 마리의 살진 양보다 더 나으므로 우리는 빈곤한 이들과 억눌린 이들에게 행하는 그 자선을 통해서 하느님께 그 자비를 베풀도록 합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영원한 거처로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세세에 영광이 있으소서. 아멘.

2015년 3월 14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24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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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축일 01월 02일)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봉직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나지안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공부하던 중에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를 만났고, 그 후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를 다녔으며, 아테네(Athenae)에서도 10여 년을 성 바실리우스(Basilius)와 미래의 황제 율리아누스 배교자와 함께 공부하였다. 30세 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즉시 바실리우스와 함께 이리스 강변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2년 후부터 부친을 돕던 중, 362년에 사제로 서품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의 주교로 임명받았다.

이 교구는 아리우스(Arius) 지역이었으므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게 될 때,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초청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8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임명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켜 381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까지 열려 문제가 심상치 않게 발전하므로, 그는 교회 내의 평화를 위하여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다가 고향 땅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에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선언문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동방교회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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