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누가 거행하는가? 마스크로 가려진 신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그 마스크 뒤에 감추어진 표정이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비대면의 불안한 시간이 길어질 때면 눈빛마저도 교환할 수 없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더 그리워집니다. “눈은 몸의 등불”(마태 6,22)이라는 복음 말씀처럼 눈을 통해서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은 겉으로 드러난 외모가 아니라 영혼의 눈빛으로 마음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라는 하나의 표징처럼 여겨집니다. 한 곳에 함께 모인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 공동체는 미사 거행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전례, 특히 미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모인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본디 교회를 가리키는 ‘에클레시아’(Ecclesia)라는 말의 어원은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따라서 당신과의 만남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가 믿는 이들의 모임을 가시적이고 살아있는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이룬다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의미하지도, 내가 좋아해서 선택하는 여러 친목 단체나 사교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모든 활동은 그 참여 인원이 많든 적든 ‘사적인 행위’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비대면 상황에서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미사를 시청하는 경우에서도 거룩한 미사 참례는 내가 선호하는 어떤 프로그램의 채널을 선택하는 행위처럼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의 행위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는 공동체 전체가 거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례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행위입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깊이 결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모두 한몸을 이루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전대미문의 희귀한 질병은 교회 안에서마저 이 믿음의 체험을 아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텅 빈 성전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없이 봉헌되는 미사 거행은 너무나 당연히 여겨 왔던 신앙의 가르침을 되짚게 만들었습니다. 한 신학자는 교우들과 함께 하는 미사와 각종 행사들이 중단된 ‘텅 빈 교회’의 현 상황을 하나의 카이로스, 곧 교회의 시대적 표징이자 호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안에서부터 문을 두드리시며 밖으로 나가시길 원하신다면, 우리도 교회 밖에서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텅 빈 교회’는 분명 교회 문밖에서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표징입니다. 믿음, 기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교회-건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친교’로서 존재했던 초기 교회의 모습을 되찾으라는 하느님의 간절한 메시지입니다. [2021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인천주보 3면, 김기태 요한 사도 신부(청학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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