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성당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느님 이야기를 하면 옛날 옛적 전래동화를
듣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분초를 다투어 일처리 하기에 바쁜 오늘, 하느님은 저 뒤편으로 밀려나
계십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조차도 영원한 생명은 뒷전이고 지금 당장의 절박함만을 해결하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부릅니다.
큰
믿음을 두지 않은 채, 나의 만족을 채우는 신앙생활을 주님께서는 ‘악하다’고 표현하십니다(루카 11,29 참조).
갑질의 횡포에 신음하는 우리
사회는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기심이 꿰차고 들어왔습니다.
내 관심사만이 제일이기에
이웃의 신음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지위, 권세와 부를 이웃과 나눌 줄 모릅니다.
만약 누군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내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면 처절한 응징으로 상대의 영혼을 짓밟아 버립니다.
이들에게 영혼의 문제란 언제든 폐기 가능한 가벼운 종이쪽지처럼
여겨집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 세상을 사랑하신 분, 이천 년 전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 ‘하늘에서 오신 분’의 고민은 요즘 들어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
- 류지인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