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심, 확인, 소명
어린 시절 하느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행복함에 재미를 더해 준 것은 미사 참례 때마다 성당에서 나누어 주던 ‘은총표’라고 불리는 스티커였습니다.
한 학기에 한 차례 열리는 은총시장에서는 그간 모아온 은총표를 일정 단위로 바꾸어, 원하는 간식거리와 갖고 싶었던 물건을 양껏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주어진 은총표의 달콤한 유혹은 제 안의 하느님 자리를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하여 은총표가 없는 날에는 성당에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성당 마당에서 홀로 은총표를 세어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너 예수님보다 은총표를 더 좋아하는거 아냐?” 툭 던진 신부님의 말씀에 잠들었던 제 마음이 화들짝 깨어났습니다.
예수님 생전에 스승님과 함께 머물던 제자들은 늘 풍성한 은총에 큰 어려움이나 근심 없이 지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난관에 봉착해도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펼치시는 그리스도의 손길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따르던 스승이 맥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자들은 위협을 받고 두려움에 떨며 그간 자신들이 따르던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미해져가는 하느님 자리에 조금씩 주님 부활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러고는 그분이 직접 나타나 당신의 실체를 몸소 확인시켜 주십니다.
마침내 제자들을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도록 이끄는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충분한 의심과 확인을 거쳐 그들의 소명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 류지인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