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의 기쁨/ 요한15,9-17 주일복음말씀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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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태열 | 작성일2015-05-09 | 조회수1,04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사랑의 기쁨/요한15,9-17 주일복음말씀묵상
<이 묵상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들입니다. 가톨릭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 해방신학 등 이단에 대하여 이를 변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신성한 하느님의 말씀이 왜곡되고 숨겨지고 있으며,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교회로 빠르게 변질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변증의 글들은 단순히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요,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실한 가르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yoondaniel을 참고 하십시오.
나의 지난 날 체험을 간증하면서, 주일복음말씀 요한복음15,9-17절의 말씀을 묵상코자 한다.
그러니까 오래 전 정신장애자인 내 아들이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어떤 연고로 나는 그 병원의 봉사자로 수시로 봉사하고 있었다. 내 아들의 나이는 그 때 15살, 중학교 2학년쯤으로 어릴 때부터 늘 걱정해오던 일이 마침내 발병하고만 것 이었다!
생각해보라! 아비의 너무나 고통스럽고 애잔한 슬픔을! 병실에 격리 수용되어 있는 아들과 그 주변을 서성이며 기도하며 봉사하고 있는 아비를! 정신장애자보다 더 고통스러운 병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정신이 나간 사람보다 더 불쌍한 이들은 없다! 절망의 세월 속에서 오직 하느님 믿음 하나 붙들고(아마 그 때는 기복신앙이었을 것이다!), 간신히 나와 나의 가족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길고 긴 고난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이제 믿음이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인지, 하느님은 누구신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님은 그때부터 나를 조금씩 조금씩 그분 안으로 이끄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던 어느 겨울 늦은 오후에 병원의 허가를 얻어 아들이 수용된 병동 안에 들어가서 내 아들과 주위에 모여든 수십 명의 정신장애자들과 함께 나는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있었다! 창 넘어 겨울 석양의 붉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나는 내 아들의 손을 붙들고 기도하던 중에 문득 ‘여기 모인 많은 정신장애자를 두고 내 아들만의 치유만을 기도할 수가 없다!’는 어떤 깨달음(양심)같은 소리를 내 내면으로부터 들은 것이다! 곧, 이 상황에서‘내 아들만을 치유해 달라’는 나의 기도는 무언가 잘못된 기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아들을 안고 주위에 모인 그들과 함께 다시 찬송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여기 있는 모든 정신장애자들과, 아니 더 크게! <이 세상의 모든 정신장애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과 그 애절한 아픔과 죽음까지도, 주님이시여, 나와 내 아들이 대신하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또한 내 아들의 고통마저도 이 아비가 온전히 대신하도록 주여 허락하소서! 주님! 정신장애자인 이 아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놀라운 기도가 내 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안겨있는 내 아들에게 <너에게는 이 아빠가 있지 않니! 두려워말고 아빠와 네가 주님이 주신 이 십자가를 믿음으로 당당히 지고 가자. 이제 기쁨으로 감당하자,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제부터 이 아비가 너의 고통과 죽음까지도 대신하는 삶을 주님과 함께 감당하겠다! 그 동안 너에게 준 많은 상처들을 용서해다오! 아들아!> 한량없이 흐르는 눈물도 그대로 둔 채 나는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기도를 계속하며 나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다! 알렐루야!
내가 어떻게? 누가 비천하고 가난한 나에게 이런 기도를 밀어 내시는가? 현실은 내 고통도 감당하기 어려워 죽어가고 있는데! 처음 잠깐 동안은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했지만, 아! 그로부터 나에게 퍼부어진 표현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기쁨, 곧 나의 모든 것을 모두 남을 위해 소진하겠다는 그분과 하나 된 그 기도로부터 얻게 된,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기쁨과 위로가 하늘로부터 부어진 것이다! 이 날, 나는 온 우주를 끌어 안는 큰 기도를 깨달은 것이다! 이 날, 삐뚤어진 내 영혼과 상처투성이의 내 몸은 치유받았다! 알렐루야! 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오! 내 영혼아 주님만을 누릴지어다! 알렐루야!
요한복음15,13-14에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라고 말한다. 오! 포도나무 그림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친히 내리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온전한 정의이다! 요한15,11절은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말한다.
바로 이 말씀이 내게 임한 것이다! 알렐루야! 어떻게 슬픔과 죽음이 깃든 이 최악의 상황에서 성령께서는 형용할 수 없는 천상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가? 나는 그날 부활의 기쁨을 충만하게 맛본 것이다! 나는 그날 비로소 주님과 참다운 친구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기도는 바위로 막아 놓은 샘과 같았다. 그런데 이 순간에 성령께서 그 바위를 치워버리셨고, 그때부터 샘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날 주님이 갈망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오! 이것이 바로 고난 중에 주님을 뵙는‘고통의 신비요, 환희의 신비’가 아닐까?! 오!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체험하고 로마서에서 간증한 “산 제물”이요, “영적 예배”가 아닐까?!(로마12,1) 알렐루야!
그리고 나는 그날로부터 언제나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눈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계시고, 당신의 부활 생명과 십자가의 효능으로 나의 영혼(혼)을 변화시켜 완전한 구원으로 이끄시니, 이 한량없는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정신장애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과 그 애절한 아픔과 죽음까지도, 주님이시여, 나와 내 아들이 대신하도록 허락 하옵소서. 아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지고한 사랑의 열매 맺음으로 부활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큰 기쁨이 되었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체험하신 그 십자가의 기쁨을 저에게도 체험께 하시고, 마침내 나에게 주신 고난을 풍성한 기쁨으로 변환시키시는 주님의 부활 생명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기도를 저에게 가르쳐 주시고, 이제 내 기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시며 언제나 기름 부어 주시는 내 아버지시여! 온전히 나를 점령하시어, 나로 하여금 오직 당신만을 의지하고, 당신만을 누리며, 당신만을 살도록 이끄소서! 내 영혼아! 너의 남은 시간과 삶을 온전히 주님만을 누리며 찬양할지어다! 알렐루야! 아멘, 아멘>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요구(요한15,13)를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그렇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생각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 곧 십자가의 처리를 받은 사람들은 친구를 위하여 대신 죽는 신적인 사랑을 현실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를 요구받는다!
오! 십자가의 신비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느 날 당신도 혹 뼈를 삭이는 고난의 환경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분으로 삶으로써,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고 또 우리 기쁨이 충만하도록”(15,11절), 그 형용할 수 없는 천상의 기쁨을 당신도 선물 받을 것이다! 아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주님의 은총으로, 십자가의 지고한 사랑과 충만한 기쁨을 체험함으로써, 바로 당신이 성령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포도나무 가지가 되소서!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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