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감사의 전례’인 미사의 의미 – 기도합시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교회는 주님의 현존을 알리고(인사),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며(참회 예식과 자비송), 주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대영광송). 하느님의 현존, 자비, 영광은 시작 예식을 아우르는 핵심 주제입니다. 사제는 함께 모인 공동체의 이름으로 앞서 행한 모든 것을 종합하여 주례자의 첫 기도인 본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아주 간결하여 미사 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지나치기 쉽지만, 그 안에는 신앙의 진리와 전례 기도의 특징을 잘 담고 있습니다. 본기도는 주례 사제가 신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의 묶음과도 같습니다. 본기도는 권고, 침묵, 기도, 백성의 환호인 ‘아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제는 먼저 손을 모으고 신자들을 향해 “기도합시다.”라고 권고합니다. 이 기도의 공동체적 성격은 언제나 ‘우리’를 주어로 삼고 있는 권고와 기도문의 형식에서 잘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그분 앞에 함께 모인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은 ‘우리’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그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며 자신도 그 백성의 일원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회중을 이끄는 존재로서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모으도록 신자들을 초대합니다. 사제직의 고귀함은 사제가 거룩한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치고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하느님 대전 앞에 서 있을 때 가장 빛납니다.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은 미사 거행의 본질적 요소로서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때의 침묵은 신자들에게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하는 내용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능동적이고 내적인 참여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이어서 사제는 팔을 벌리고 그날 미사의 지향을 담은 본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곧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받아들이시도록 교회의 모든 기도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는 사제의 동작과 자세도 ‘천사의 손에서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는 향 연기’(묵시 8,4 참조)처럼 하늘을 향한 신자들의 기도의 마음을 동반합니다. 무엇보다 이 자세는 십자가에서 팔을 펼치시어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본기도는 그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아주 간결하고 그 구조가 명확합니다. 먼저 본기도는 언제나 하느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전능하시고 영원하신”과 같이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수식어가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 업적에 대한 ‘기념’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전례 시기에 따라 거행되는 그날 미사의 성격이 잘 나타납니다. 그다음에 비로소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는 간구의 내용이 자리합니다. 끝으로 사제는 삼위일체 성격의 맺음말로 기도를 마무리하고, 신자들은 “아멘”으로 환호함으로써 사제가 바친 청원에 함께 참여하고 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습니다. 본기도는 간결한 표현 안에 신앙의 진리를 담아낸 아름다운 교회의 기도입니다. 매일 미사에서 사제가 바치는 본기도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의 기도가 좀 더 단순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하느님을 부르고 잠시라도 고요한 침묵 안에 머무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사랑을 먼저 기억하고 필요한 은총을 겸손되이 간구합시다. [202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인천주보 3면, 김기태 요한 사도 신부(청학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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