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5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Your hearts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your joy away from you.
(Jn.16,22)
제1독서 사도 18,9-18
복음 요한 16,20-23ㄱ
제가 자전거 타는 것을 보고 “신부님처럼 젊다면, 저도 지금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하시는 50대 후반의 자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젊다’라는 말을 잘 듣지 못합니다. 제가 신부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호칭도 30대 초반에 주로 ‘총각’으로 불렸다면, 이제는 ‘사장님, 아버님, 아저씨’ 등등의 말을 듣고 있지요. 문제는 이제 이런 호칭들을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저 역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마음은 10대이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이 자매님께서는 당신보다 젊은 제가 부럽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나이 때문에 못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신부님은 현재 60대의 나이에도 산악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해외일주도 하십니다. 또 어떤 신부님께서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참, 은퇴 후에 홀로 배낭을 짊어지고 세계 일주를 하신 형제님도 생각나네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나이’라는 문제의 이유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하지 못했다고 후회하기 보다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수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반에서 함께 수영하시는 분 중에서 연세가 좀 있으신 자매님이 계십니다. 체력도 별로 좋지 않고, 실력도 늘지 않습니다. 이 분을 보고서 수영강사가 자극을 주려는지 이렇게 말씀하세요.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더 높은 상급반에 올라가셔야지요.”
그러자 “나는 선수될 것 아냐. 여기서도 충분히 운동이 되는데 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요. 전문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굳이 속도를 내어서 할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남들의 시선을 볼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만족과 기쁨을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남에게 자신의 기쁨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위협에 걱정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 받아들일 때,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기준 아래에서 철저히 생활하셨습니다.
주님을 기억하면서 이제 세상의 시선에 연연해서 자신의 기쁨을 빼앗기는 어리석은 내가 되지 맙시다. 대신 주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을 내 것을 만들어 참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각각 어떤 특별한 연령대 밖에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이 존재한다. 주의 깊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커다란 횃불로 키워 내 생을 밝힌다(무라카미 하루키).
의정부교구 덕소성당. 몰래 신자석에 앉아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기도
두 형제님께서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하기 싫어 죽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이 말씀에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요. ‘하느님, 부디 제가 그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내 자신의 기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대화가 아닐까요? 주어진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진암 100년 성당을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그 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