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 월,
*본다는 것
손을 앞으로 뻗어서 엄지손가락을 세우면 자신의 엄지손톱이 보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아주 뚜렷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크기는 바로 그 엄지손톱만큼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흐릿하거나 뿌연 형상으로 비춰질 뿐 명확하게 볼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때, 끊임없이 동공을 움직이는가 봅니다.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영역이 협소하니, 쉴 새 없이 이리저리 동공을 굴려 애매하고 흐릿한 나머지를 메워야겠지요.
어디 이뿐인가요.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눈을 넘어 더 크고, 능력 있는 눈을 만들었지요.
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높은 산에 천문대를 짓고, 엄청난 크기의 망원경을 걸어 놓았습니다.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아, 급기야 우리가 사는 이 지구 대기권 너머에 허블망원경을 띄워 놓았습니다.
더 시원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 큰 것만이 아닙니다.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것들을 보기 위해 엄청난 배율의 현미경이나 투시경이라는 눈을 비치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과학문명의 본질이란 아마도 이 ‘봄’의 능력 향상일런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제쯤이나 우리는 내면을 볼 수 있는 진실된 눈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정말 필요한 눈은 바로 이 눈인데요. 들보가 보이지 않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보려 하지 않아 보이지 않습니다.
- 김태홍 신부(서울대교구 수유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