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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강론]"프란치스코 교황, 파라과이 순방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다."(7월 12일 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16 조회수1,11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 파라과이 순방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다.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celebrates-final-mass-of-his-visit-to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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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5년 7월 12일 주일 (연중 제15주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아모스 예언서 7,12-15


                      화답송 : 85(84),9ㄱㄴㄷ과 10.11-12.13-14(◎ 8 참조)


                      제2독서: 에페소서 1,3-14<또는 1,3-10>


                      복음: 마르코 복음 6,7-13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685&gomonth=20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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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2  바티칸 라디오 (Vatican Radio)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라과이 방문 마지막 날인 일요일(7월 12일)에 아순시온(Asuncion) 외곽의 Nu Guazu에서 야외 미사를 올림으로써 남미 순방을 마무리했습니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신자들을 포함 수십만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환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우리의 삶을 좀먹고 우리를 자기 안에 가두어 버리는 고립의 악을 경고했습니다.   


다음 교황의 미사 강론 영어 번역문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이것은 시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 백성, 하느님과 우리의 이 신비한 친교를 기념하도록 우리는 초대 받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경작하는 이 지구에서 비는 그분 현존의 표징입니다. 비는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친교가 열매를 맺게 하고 언제나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 확신은 믿음에서 비롯되며 우리가 주님 은총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서 나옵니다. 이는 언제나 우리의 땅을 변화시키시고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배워 습득하는, 가르침을 받는 확신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족의 삶 안에서 교육되는 확신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르도록, 우리를 결코 배반하지 않으시는 한 분이신 그분의 제자가 되도록, 그분의 모든 것, 그분의 삶 그 자체를 나누도록 격려하는 사람들 모두의 얼굴에서 빛나는 확신입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우정에서 비롯된 확신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제자됨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신분 증명서를 보여 줍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증명서, 우리의 보증.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부르시어 명확하고 정확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부분에서의 마음가짐과 활동의 방법들에 대해 요구하십니다. 이것들은 때때로 우리를 과장된 것처럼 또는 부조리한 것처럼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가짐들은 상징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매우 정확하시고 매우 명료합니다. 그분은 단순히 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 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마음가짐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이 모든 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듯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빵”, “돈”, “보따리”, “지팡이” 이런 말들에 집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의 핵심 단어를 인식하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는 것에 저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영성의 마음, 제자로서의 우리 경험의 마음에 있는 말입니다. 그것은 “받아들임(welcome)”입니다. 좋은 스승님, 좋은 선생님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받아들여 지도록, 환대를 경험하도록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집에 머물러라.” 그분께서 제자들이 신자 공동체의 특징 중 한가지를 배우도록 파견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사람들을 받아 들이고 환대하는 것을 배우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나 주인, 규율과 규제로 무장한 관리자로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마음을 바꾸는 일에 관한 것임을 제자들에게 알게 해 주십니다. 그것은 다른 율법 아래서 다른 규율을 갖고로 다르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에 관한 여정입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와 갈등과 분열과 미신의 길에서 돌아 나와 생명과 관용과 사랑의 길에 들어 서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권세를 부리고 억압하고 조작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따뜻하게 맞이하고 받아 들이고 보살피는 사고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조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며 우리의 삶과 선교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계획과 프로그램에 관한 선교를 우리가 얼마나 자주 보게 됩니까. 마치 우리 자신의 주장을 근거로 사람들을 회심시킬 수 있다는 듯이 전략과 전술과 책략과 기술을 포함하는 선교를 얼마나 자주 우리가 목격합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매우 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들이 확신할 수 있게 하라.  


교회는 열린 마음을 가진 어머니입니다. 특별히 더 큰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과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받아 들이는 법을 교회는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성스럽게 맞이하는 환대의 집입니다. 우리가 환대의 말, 맞이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한 일들을 할 수 있는지요!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이 위로 받고 얼마나 많은 절망이 사라지는지요! 배고픈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이방인들, 헐벗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마태오 복음 25,34-27), 나병에 걸린 사람들과 중풍 들린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믿음이 없거나 잃어 버린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박해 받는 사람들과 실업자들을 맞아 들입니다. 우리의 지구가 그렇게 더 풍요롭게 복 받게 해 주는 다른 문화들을 맞이합니다. 죄인들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죄의 밑에 악이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립니다. 해를 끼치고, 큰 손상을 입히고 조용히 너무나 많은 생명을 파괴하는 지독한 뿌리가 있습니다. 서서히 우리의 마음 안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 삶을 좀먹는 악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고립입니다. 고립에는 많은 근원들과 많은 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많이 파괴하는지요. 우리를 얼마나 많이 훼손하는지요. 그것이 우리를 하느님과 타인들과 공동체에 등돌리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 자신 안에 가둡니다. 바로 이 때문에 교회, 우리의 어머니가 해야 하는 진정한 일이 업무들과 프로젝트들을 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형제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요한 복음 13,35)이므로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은 생명과 아름다움, 진리 그리고 완성의 지평선을 우리 앞에 펼쳐 놓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지평선을 닫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결코 그분 자녀들의 삶과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너그러우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에게 아들을 주시고, 우리에게 아들을 내어 주시고 하느님께서 아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내어 주는 형제애의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분은 새로운 지평선을 여러 주십니다. 그분은 새롭고 분명한 말씀이십니다. 그 말씀은 그토록 많은 소외와 분열과 외로움과 고립의 상황에 빛을 비추십니다. 그분은 외로움의 침묵을 깨는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를 위해 노력하다가 지치고 소진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어 주신 생명은 사람들의 가장 깊은 요구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복음이 제시하는 것을 위하여, 곧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와 우리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복음의 기쁨, 265).


한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를 받아 들여 달라고, 우리를 맞이해 달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빈곤함이고 자유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삶 속에서 따뜻하지 맞이하지 말고 환대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다른 형제 자매들, 특히 희망과 삶의 열정을 잃은 사람들의 삶을 받아 들이지 말고 껴안지 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구, 공동체, 경당(chapels),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을 어디든지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진정한 만남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교회는 마리아님 같은 어머니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는 본보기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위에 군림하지 않았고 그 말씀을 맞이하고 태중에 말씀을 품으셨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주셨던 마리아님같이 우리도 또한 보금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지구와 같이 보금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지구는 씨앗을 질식시키지 않으며 그것을 받아 들여 씨앗에게 자양분을 주고 그것을 키웁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 과정이고 그것이 우리가 이 파라과이 땅에서, 마리아님 같이 믿음을 갖기를 원하게 된 과정입니다.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는 확신을 갖고 믿음 안에서 우리의 형제 자매 속에 계신 하느님의 삶을 맞이하면서 말입니다. 

 


(바티칸 라디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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