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은 포도주 장인 | |||
---|---|---|---|---|
작성자조경희 | 작성일2015-09-04 | 조회수76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내성적인 사무엘은 밖에서 공차고 뛰어놀기보다는, 마음맞는 친구들과 수다떨거나 활동량이 적은 만들기나 게임하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아들이 태어나면 저절로 축구도 잘하고, 농구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할줄 알았는데, 남자아이라고 다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는것이 아니란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덩치는 또래보다 훨신 큰데다가 운동신경도 둔하고, 결정적으로 겁이 많습니다. 겁이 많으니 몸을 움직이기에 앞서 걱정과 두려움이 먼저 몸을 지배합니다. 운동하기에 최악의 컨디션이지요... 처음 학교에 들어가니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축구클럽에 가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사무엘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얼른 따라 가입했죠. 그곳에서 저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사무엘을 뺀 다른 아이들이 모두 박지성선수 같아보였거든요. 개중에는 호날두 저리가라할만큼 엄청난 기술을 갖고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 틈에서 사무엘이 제대로 자리 잡을리 만무했죠. 그렇게 2년동안 훈련이다 시합이다 주말도 반납하고 사무엘데리고 같이 뛰어다녔습니다. 갈때마다 다른 아이들 부모앞에서 제가 괜히 죄스럽고, 미안하고, 면목없고, 눈치보이고... 박지성같고 호날두같은 아이를둔 부모들은 괜스레 웃음소리도 더 크고 우렁차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제가 느끼는 감정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이 느끼는 보이지않는 박탈감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지만 제 눈앞에서 날라다니며 멋지게 골넣고 세레모니하는 친구들에 비해,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본인도 모를리 없었을것 입니다. 2년동안 자진해서 뛰었던 축구클럽을 올해는 한해 쉬어보면 어떻겠냐는 조심스런 제 제안을,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줄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렇게 축구클럽을 쉬고있는중 입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하고싶느냐고 아직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사무엘도 자기가 즐겁게 잘할수 있는것이 축구가 아니라는것쯤은 이제 스스로 알고있을것 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루가 5,33-39) 세상 모든 사람이라는 '부대'에 담길 '포도주'는, 하나도 같은 것 없이 저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사무엘의 부대에 담길 포도주는 엄마인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그 권한이 있으시다는 것을 매 순간 되새깁니다. 그래서 최대한 제 인간적인 욕심과 이기심따위를 사무엘의 부대안에 넣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제 묵은 것' 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키우며 저도 어쩔수 없이 아이에게 무엇이 좋은것이고, 무엇이 나쁜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선입견과 편견을 알게 모르게 심어주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세상을 좀더 오래 살아봤다는 교만으로 툭툭 튀어나오는것 같습니다. 사람이기에, 자기가 바라고 중요시여기는 것을 자식의 부대에 담기 쉽습니다. 내가 못 이룬것, 내가 하고싶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의 묵은 것이지 내 자녀의 새 부대에 담길 새 포도주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포도농장의 농부이십니다. 매년 농사지으신 포도를 저장하시고, 숙성시키시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부대에 담아주실 수많은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누구든지 새 부대만 준비되어 있다면 바로 부어주실 새 포도주가 그분의 창고안에 넘치도록 가득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부대에 꼭 맞는 포도주를 미리 생각하시어 만들어 내시는 포도주 장인이십니다. 그분의 솜씨를 믿고 어서 새 부대를 마련해 나만의 포도주를 가득히 부어달라 청해야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깊은 포도주의 향이 코를 찌르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부대에 내 묵은 포도주를 섞어넣어, 하느님께서 부어주시는 새 포도주까지 망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엄마가 될수 있길 간절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