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의 학교 -사랑도 보고 배운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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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5-09-07 | 조회수1,037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2015.9.7.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사랑의 학교 ‘사랑도 보고 배운다’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사랑도 신앙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보고 배울 사랑이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면 백문이불여일견이라 ‘와서 보라’는 주님의 초대도 결국은 사랑을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와서 보라는 주님의 초대에 응해 매일미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시토회를 일컬어 ‘사랑의 학교’라하는데 누구나에게 인생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평생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의 사랑을 보고 배웠기에 사랑의 순교가 가능했습니다. 오늘 복음 장면을 통해서도 제자들은 물론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보고 배웁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사랑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랑은 용기입니다. 사랑의 확신이요 사랑의 용기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위태한 상황에서도 지체없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명령하십니다. 말 그대로 사랑의 용기입니다. 둘째, 사랑은 지혜입니다. 사랑에서 분별의 지혜가 나옵니다. 적대자들과 예수님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사랑에서 발상의 전환도 이루어집니다. 적대자들의 분별의 잣대로보면 안식일법을 범한 예수님이 죄인이요, 사랑의 잣대로 보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신 예수님에 딴지를 거는 적대자들이 오히려 죄인입니다. 안식일법뿐 아니라 모든 율법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사랑의 잣대로 보면 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셋째, 사랑은 자유입니다. 사랑과 자유는 함께 갑니다. 사랑의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자유인입니다. 사랑없이는 참 자유도 없습니다. 사랑의 진위역시 자유로움으로 드러납니다. 부단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확장되는 내적자유입니다. 넷째, 사랑은 신비입니다. 세상 모두가 신비입니다. 신비중의 신비가 사랑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예수님의 탐구가 참 깊습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다섯째, 사랑은 깨달음입니다. 우리 인생 역시 깨달음의 여정,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바오로의 노력도 온통 깨달음에 집중되어 있음을 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 하느님의 신비,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보물창고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역시 우리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이렇게 수도생활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모시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오그라든 마음을 활짝 펴주시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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