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18 금,
* 마음 준비
일곱 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어떤 모임 장소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이 무료했던 저는 현관에 흩어진 신발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한 아주머니께서 다짜고짜 꿀밤을 때리며 야단을 치십니다.
“이 녀석아, 신발 왼쪽 오른쪽을 다 바꿔서 장난을 쳐놓으면 어떡하니?”
각양각색 여성 뾰족구두의 왼쪽 오른쪽을 분간하기에는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도 있지만, 눈앞에 주어질 칭찬과 보상에 마음이 어두워져 정작 신발을 신게 될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시중을 들려면 사고의 전환을 꾀해야 합니다.
내 기준이 아닌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무게중심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자연스러우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치유를 받은 이들이 자신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베푸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던 건 그 마음이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따랐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라면 실천에 앞서 늘 마음부터 점검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신앙은 자유로움이 아닌 부담으로 우리네 삶을 밀어 넣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류지인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