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 주일 특집] 미사 때 읽는 독서와 복음 어떻게 정해지나요?
전례주년에 맞춰 선택… 3년이면 신·구약 대부분 통독 - 사제가 복음 봉독 후 신자들을 향해 성경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례주년 전체에 걸쳐 독서의 구체적인 선택과 배정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스스로 고백하는 믿음을 차츰 깊게 하고 구원 역사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우리는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영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읽고 듣는다. 미사 때 읽는 성경 구절들은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배정됐을까?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독서와 복음의 구성을 통해 전례 거행 안에서 성경의 중요성을 되짚어본다. 나아가 성경의 깊이를 들여다보기 위한 성경 주해서 활용법을 배워본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미사에 참례하든지, 신자들은 같은 날에는 같은 말씀을 듣는다. 이처럼 전례 주기에 따라 모두가 같은 성경 말씀을 듣도록 성경 구절을 배정해 둔 것이 1969년에 발행된 「미사 독서 목록 지침」(Ordo Lectionum Missae)이다. 이 지침의 제2표준판은 1981년에 반포됐다. 지침에 따르면, 미사 독서의 선택과 배정에는 일반적인 원칙과 주일 및 축일 원칙, 그리고 평일 원칙이 있다. 일반적인 원칙 첫 번째는 사순·부활·대림·성탄 등 전례적 특징이 있는 시기에는 그 시기의 특성에 맞게 성경 말씀을 배정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림 시기에는 이사야서, 성탄 시기에는 요한의 첫째 서간을 배정하고, 부활 시기에는 사도행전을 읽는다. 두 번째는 독서의 길이는 신자들이 잘 경청할 수 있도록 중도의 원칙을 적용해 적절한 길이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본문이 지나치게 이해하기 어렵거나 문체나 비평, 주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으면 해당 구절을 생략하도록 했다. 주일과 축일의 독서 목록 배정 원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세 가지 독서로 구성되는데, 제1독서는 구약, 제2독서는 사도서, 즉 전례 시기에 따라 서간이나 요한 묵시록을 읽는다. 세 번째는 복음이다. 이로써 신·구약성경과 구원 역사의 단일성이 밝혀지고 그 중심은 파스카 신비로 기념하는 그리스도이심이 드러난다. 둘째, 가·나·다해의 3년 주기로 성경 독서가 배정되므로 3년마다 같은 성경 본문을 읽게 된다. 셋째, 한 해의 여러 시기와 각 전례 시기의 특징에 따라 두 가지 원칙, 즉 ‘주제의 조화’와 ‘준연속 독서’ 원칙이 적절하게 적용된다. ‘주제의 조화’란 독서의 주제와 내용이 서로 연결됨을 뜻하고, ‘준연속 독서’란 독서가 성경 본문의 순서에 따라 진행되지만 전례 독서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을 생략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두 원칙은 연중 시기 주일은 물론 중요한 전례 시기인 대림·성탄·사순·부활 시기의 주일과 평일에, 각 시기의 특성에 따라 적절히 적용된다. 평일 독서 배정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일 미사 독서는 2개로, 첫째 독서는 구약이나 사도서(서간 또는 요한 묵시록, 부활 시기에는 사도행전)를 읽으며, 둘째 독서는 복음이다. 둘째, 사순·대림·성탄·부활 시기의 평일에는 한 해 주기로 배정, 해마다 같은 독서를 한다. 반면 연중 시기의 34주 동안 평일에는 복음은 한 해 주기로 매년 같은 본문을 읽지만, 첫째 독서는 짝수해와 홀수해로 나눠 2년 주기로 배정한다. 평일의 독서에서도 주일과 축일의 독서 배정에서와 같이 ‘주제의 조화’와 ‘준연속 독서’ 원칙이 적용된다. 성인 경축일(대축일, 축일, 기념일)에는 그날을 위한 고유 독서를 배정하거나 성인 공통부분에서 선택해 사용한다. 그밖에 예식 미사, 여러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드리는 기원 미사, 신심 미사, 죽은 이를 위한 독서 배정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교회는 전례주년 전체에 성경 말씀을 적절하게 선택, 배정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깊게 하고 구원 역사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은 “하느님 말씀의 더욱 풍성한 식탁을 신자들에게 마련하여 주도록 성경의 보고를 더 활짝 열어, 일정한 햇수 안에 성경의 더 중요한 부분들이 백성에게 봉독되어야 한다”(51항)고 권고한다. 실제로 3년 동안 미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례하면 신·구약성경 대부분을 통독하는 셈이 된다.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23일, 박영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