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05 목,
*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예수님
내가 양치기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놔둔 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뒤쫓아 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과연 합리적일까요?
그 한 마리 때문에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세상은 가르치지 않나요?
그래서 대부분 그 한 마리를 포기하지 않을까요? 아니라고요? 글쎄요.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지난 수십 년간 농어촌의 희생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습니다.
그런 희생이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외형적으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일구어 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그런 희생이 여전히 강요되는 현실입니다.
언제 나도 그 양 한 마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우리는 아흔아홉 마리의 무리 속에 끼어 있으면서 낙오자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심 안심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소수를 희생시키는 데에 가담하지 말고 그 소수를 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시리아 이민자를 유럽의 모든 교구가 한 가족씩 받아들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가 지켜야 할 기본 강령입니다.
- 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공릉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