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서기
본당 신자 중에 앞을 못 보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집안의 유전적인 내력과 부모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조금씩 안 보이기 시작하자 홀로서기 준비를 하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집에서 승강기까지 몇 걸음, 슈퍼까지 몇 걸음, 공원까지 몇 걸음 등
필요한 동선은 다 외워 놓으셨습니다.
힘든 것은 없냐고 물으니 걸어가는데 누가 말 시키거나 인사하면 몇 걸음 걸었는지 잊어버려 낭패를 겪으신다고
합니다.
얼마 전 방문을 했을 때는 집 안에 빨래도 널려 있고 밥 냄새도 구수하게 났습니다.
누가 왔다 갔냐고 물으니 역시 혼자 다 하셨답니다.
자녀들이 반찬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가르쳐 주기에 지장없다 하십니다.
많은 시간 침묵 속에 기도하며 기쁘게 지내십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프랭클 박사는 이야기합니다.
“환경 때문에 견디어 낼 수 없는 삶이란 없다.
의미와 목적의
결핍으로 견디어 내기 힘든 삶만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손발 멀쩡하고 볼 수 있는 나는 아직도 누가 해줘야 먹고 빨래에 청소까지 도움을 받고 있으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 김영욱 신부(인천교구
숭의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