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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묵시1,17-20)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2 조회수1,574 추천수0 반대(0) 신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이상/ †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묵시1,17-20)>

 

 

묵시1,17상은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 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매번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그분의 위임이 있었다. 이번의 나타남, 또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하여 요한은 자신이 죽은 것 같음을 보았다. 요한은 물론 이사야(이사6,1-5)와 욥(42,5-6)과 다니엘(다니10,8)과 바오로(사도9,1-4)도 역시 이러한 체험을 하였다.

 

요한은 단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아주 친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주님을 보았을 때 그는 땅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다. 만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나 여전히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므로 성경은 육체에 속한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를 받을 수 없고(갈라5,19-21),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요한3,3).

 

이 말씀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육체에 속하고 더러운 사람은 실로 영광의 주님을 보기에 합당하지 않다. 장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때의 영광은 현재보다 더욱 크다. 그러므로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혼이 몸을 떠날까 두려워하며 산으로 올라가서 진노가 그들을 가리우기를 간구할 것이다(묵시6,16).

 

1,17중반절은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비록 그분이 영광 가운데 계셨지만 그분의 사랑은 여전하시다! 만일 그분의 장래의 영광이 온전한 사랑이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별로 큰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은 그분의 손으로 많은 병자들 위에 안수하시며,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여 많은 상한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셨다. 지금도 그분은 이렇게 하고 계신다.

 

그분의 손과 그분의 말씀은 단지 위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요한에게 능력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다니엘서 817절부터 18, 109절부터 19절의 말씀을 보면, 여기에서의 이러한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분의 손은 요한으로 하여금 힘 있게 하였고, 말씀은 그로 하여금 힘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이는 요한이 주님의 사랑이 이전과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움이 자연히 사라지고 새 힘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1,17-18절은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전에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두 가지 방법으로 그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첫째는 그분의 영광으로, 곧 이것은 요한이 봄으로써 즉시 알게 된 것이다. 둘째는 그분의 말씀으로, 곧 이것은 영적인 것으로서 요한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그분 자신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또한 그분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이 그분 자신의 세 방면을 계시하신 것을 볼 수 있다.

(1)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이것은 그분의 위치이다. 이것은 구약에서의 여호와 하느님의 선포이다(이사41,4; 44,6; 48,12). 이는 그분이 시종 불변하시는 하느님임을 나타낸다. 그분이 처음이라는 것은 그분이 만유의 근원임을 말해주고, 그분이 마지막인 것은 그분이 또한 만유의 종결임을 나타낸다.

 

(2) “나는 전에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이는 그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나타낸다. 비록 그분이 사람의 죄를 위해 죽었었지만, 그분은 이제 이미 부활하셨고 더 이상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실 것이다.

 

(3) “나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있다.” 여기서 사망은 몸에 대해 말한 것이고, “음부는 영혼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음부로 들어간다. 원문에서 음부는 하데스(hades)로서 아래의 세상을 의미한다. 음부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이르게 될 고통의 장소이고,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이 이르게 될 안식의 장소이다(루카16,19-31). 가톨릭성경의 저승이란 해석은 민속적, 또는 미신적 표현이다.

 

가톨릭교회는 연옥이라는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교리로 정했을 뿐만 아니라, 더 놀라운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위령 미사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라는 비성경적인 것들과 마리아와 천사와 성인들에게도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간구하라고 가르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이단이다! 왜 이런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과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왜 이런 거짓들을 만들어 내어 믿는 이들을 미혹하는 것일까? 이것은 너무나 놀랍고 마귀적이다!

 

16세기 로마가톨릭의 극도의 부패와 타락상과 면죄부사건이 마침내 종교혁명의 태동으로 이어진 것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가톨릭교회는 변화는커녕, 더욱 그 내용이 악하게 진행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곧 하느님의 경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다만 성경의 말씀과 진리에만 근거하여 이 글들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진리의 말씀을 말하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묵시1,20절의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의 위임을 받았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그러나 음부는 잠정적인 것이다. 영원한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며 불못이다! 열쇠는 문을 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망과 음부는 닫을 수 있는 문이 있음을 알 수 있다(마태16,19; 사도2,24). 열쇠가 누구 손에 있다는 것은 권위가 그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본래 이 사망과 음부의 권세는 사탄의 손에 있었다(히브2,14). 그러나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음부와 사망은 그 권세를 잃었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 또한 주님 손에 맡겨졌다! ! 이것은 어떠한 승리인지! 알렐루야!

 

1,19절은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는 위의 문장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주님께서 이미 승리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 이 성경 구절은 이 책의 단락을 우리 앞에 분명히 배열해 주고 있다. (1) “네가 본 것”(과거), (2) “지금 일어나는 일들”(현재), (3)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장래)이다.

 

(1) “네가 본 것보다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과거 완료형으로서 이미 본 것을 가리킨다. 곧 요한이 1장에서 본 이상을 말한다. (2)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현재 여전히 존재하는 일을 뜻한 것으로서 2-3장에 기록된 교회 시대의 일을 말한다. (3)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은 교회 시대 이후의 계속되는 일로서, 묵시4-19장까지는 장래 일에 대한 기록이다.

 

1,20절은 네가 본 것은 내 오른 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등잔대).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비록 요한묵시록에는 많은 비밀들이 있지만 그러한 비밀들이 해석될 때는 나타난 계시로 변한다!

촛대가 교회인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일곱별일곱 사자를 가리키는데 이 사자는 대체 누구인가?

 

여기서 일곱 사자는 무엇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가장 정확한 답변은 교회가 교회인 것처럼 사자는 다만 사자이다. 그렇다면 사자가 바로 사자라면, 사자들은 어떠한 부류의 사자를 가리키는가? 성경에 의하면 사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의 사자(마태22,30)요 또 하나는 사람의 사자(하까1,13)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는 결코 하늘 위의 사자, 곧 천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1) 비록 하늘 위의 사자는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지만 교회의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2) 하늘 위의 사자는 천사로서 영적인 것이므로 물질적인 서신을 받을 수 없다. (3) 이 책이 주님께서 하늘 위의 사자를 통해 요한에게 지시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하늘 위의 사자가 요한에게 서신을 쓰는 일이 있겠는가? (4)주님은 스미르나의 사자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묵시2,10). 만일 여기의 사자가 하늘 위의 사자라면 그가 어찌 죽도록 충성할 자격이 있겠는가?

 

여기의 사자가 하늘 위의 사자가 아니므로 분명 사람의 사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다! 이에 대해 성경의 사례가 있다. 2코린8,23절과 필리2,25절은 사자의 위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사자가 대표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자는 충분히 교회를 대표하고 교회 가운데서 중요한 책임을 맡으며 교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교회의 하락과 타락의 시대에는 그러한 공식적인 사람들이 아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더욱 그 범위가 넓혀진다.

 

이것이 교회 방면에 대한 사자의 위치이다. 주님의 방면에서 이 사자들은 또한 별들로 대표되었다. 별들은 빛을 발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생명의 상태를 말해 준다. 또한 별들은 주님 오른 손에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주님에 의해 쓰임 받으며 권위가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자”, 전달자는 교회들 안에 있는 영적인 사람으로서 비밀스럽게 예수님의 증거를 짊어질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이 기록되었을 때에는 교회의 타락 때문에 교회의 장로나 감독 등 교회 안의 그러한 직분들이 변질되었다.(성경에는 목자, 장로, 집사, 사도만 표현될 뿐, 오늘날 신부, 목사, 주교, 추기경이니 교황 등의 직분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주님은 영적인 실재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곧 이 책에서는 장로나 감독과 같은 교회의 공식 직분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주님의 위임을 받은 교회들의 전달자를 강조하고 있다!

 

믿는 이들은 교회가 타락하여 어둠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의 증거와 합당한 교회생활을 위하여, 이를 위임받은 전달자, 곧 교회의 사자들의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실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주님은 모든 형식적인 것들을 거절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들 가운데서 걸으실 때 그분은 오른 손에 교회의 사자, 곧 전달자들을 붙들고 계신다! 단지 형식적인 교회의 지위만을 가진 자가 되지 말고 빛나는 별이 되기를 갈망하라!

 

이 책의 첫 번째 이상, 곧 교회들에 관한 이상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들의 전달자를 교회들과 함께 이전에 없었던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밝히고 있다! 이 일을 위해서 믿는 이들은 자신의 영 안에서 특별한 이상을 보아야만 한다!

내 글을 읽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교회의 타락이 만연한 이 시대에 당신이 바로 일곱별이며 일곱 교회의 사자됨의 이상을 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주 예수님! 이 말씀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도전과 큰 용기와 큰 보람이 되고 있는지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요한묵시록 연구'를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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