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고시마 17년산
고급 술 이름이 아닙니다. 사람 이야기입니다. 20년 전 신학교에 함께 입학했던 형님이 있었습니다.
2학년 1학기 때 신학교를 그만두셨죠. 그리고 얼마 후 다른 수도원에 입회하였다가 1년쯤 지나 그 수도원을 나왔고 다시 새로운 수도원에
입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 살기 급급해 잊고 지냈는데, 3년 전 17년 만에 그 형이 일본 가고시마교구에서 사제품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17년간 형은 수도원 세 곳, 신학교 세 곳을 거쳐 교구 두 곳을 방황하다가 신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형이
자랑스러워 가고시마에서 거행된 서품식에 찾아갔습니다. 그날 주교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낯선 일본 땅에서 사제로 생을
마감하러 이곳을 찾아 준 이 형제에게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549년 이 땅을 밟으셨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께서 일으키셨던 신앙의
바람이 이 한국인 새 사제를 통해 다시 한번 이 땅에 휘몰아치기를 기도합니다.” 서품식이 끝난 후 후배사제가 된 그 형에게 이렇게 일러드렸죠.
“형님!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그대는 가고시마에 살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온 것임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처럼요! 가고시마 17년산인
형님이 60년산, 70년산이 될 때까지 기도할게요!”
- 김홍석 신부(군종교구
해성대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