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의 정석
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는데 제 힘으로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잘 다루는
친구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당시는 시험 기간이라 다들 바쁘고 예민해서 섣불리 부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 반에서, 아니 신학생 전체를 통틀어서 컴퓨터를 제일 잘 다루잖
아. 내 컴퓨터가 조금 이상한데, 너라면 ‘식은 죽 먹기’일 것 같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왔어. 고쳐 줄 수 있겠니?”
친구는 웃으면서 흔쾌히 컴퓨터를 고쳐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
다. 그냥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당신께서 마음만 먹으신다면 이 정도 병은 단숨에 고치실 수 있습니다. 저는 확신을 가지고 당신 앞에 왔습니다’라고 먼저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도 흔쾌히 병을 낫게 해주
십니다.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줄만 알았지, “당신만이 이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께선 충분히 이루어 주시고도 남습니다!”라는 확신에 가득 찬 고백을 드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박민우 신부(서울대교구 서교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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