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들의 전통 안에 ‘기억’이라는 개념은 참 흥미롭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법이 담긴 모세오경을 읽는 것은, 더욱이 모임 안에서 읽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이 그 자리에서 재현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또한 회당에서 그 기억의 재현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사야 예언서의 해방과 은총의 선포는 더없이 중요한 주제지만, 하느님 말씀의 거룩함은 매일의 미사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해서
십자가의 희생 제사는 항상 그 정점에 있습니다. 그 은총의 샘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생명에 우리는 입을 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말’입니다. 사람의 언어습관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형성되지만,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통해서 비로소 뱉어지는 것입니다. 말은 사람, 사물, 사건 상호간의 관계, 정의, 진행하는 개별 인간이 묶여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언어가 없으면 감정도 지식도 생각도 나눌수 없습니다. 또한 없는 것을 언어를 통해 나누면 그것을 거짓말이라 부르고, 그것은 재현할 알맹이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힘 있는 사람이 거짓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없는 알맹이를 만들어내려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 앞에 모래벽을 쌓고 거기에 기대려고 하는 노력은 결국 허물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생명이 그 안에 깃들여 살 세상을 만들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 힘은 모든 묶여 있는 것들을 해방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포를 듣는 이들 안에서 이루어내십니다. 오늘 우리의 언어들이 하느님이 하셨던 모든 일을 기억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재현해내는 참신앙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김동원 신부(서울대교구 대만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