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수도원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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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6-04-16 | 조회수4,588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2016.4.16.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사도9,31-42 요한6,60ㄴ-69
"주님,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시편119.147). 저에겐 운동도 기도입니다. 새벽 강론을 쓴 후 기도하며 걷다가 수도원 십자로 중앙에 위치한 ‘예수부활상’ 앞을 지날 때 마다 잠시 멈춰 거수경례 때 바치는 세 짧은 고백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감사의 기쁨, 찬미의 기쁨, 사랑의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며칠전 가톨릭 신문에서 읽은, 꼭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에 집착하지 않는 명랑함으로 올라와야 한다.
하여 우리를 가볍게 하는 바오로 사도의 ‘항상 기쁘게, 늘 기도하며, 어떤 처지에서 든지 감사하며 살라’는 말씀이 영원한 진리임을 깨닫습니다. 영혼에 찬미와 감사의 양날개를 달아야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무거워지기는 쉽고 가벼워지기는 어렵습니다. 나태해지기는 쉽고 근면해지기는 어렵습니다.
다 일맥상통하는 죄로 향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거워지기는 쉬워도 가벼워지기는 어렵습니다.
사탄은 중력에 의해 추락하였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중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죄의 중력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까요?
사탄은 중력에 의해 추락하였습니다.
답은 단하나 부활하신 주님만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이 참 정확합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마지막 남은 열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열두 제자를 대표한 베드로의 말이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말고는 갈 분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는 파스카의 예수님께 우리가 드릴 답변도 이 말 하나뿐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우리를 무겁게 하는 육적 삶이요, 우리를 날로 가볍게 하는 영적 삶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들일 수 있는 길도 말씀의 맛뿐입니다.
말씀은 식食이요 약藥입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영육의 건강에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바로 오늘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 유감없이 그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모습은 얼마나 경쾌하고 자유로운지요.
이제 박해는 끝나고 사울의 회심과 더불어 온 교회는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니 순전히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어 눈부시게 펼쳐지는 베드로의 활약입니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베드로를 통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에 즉시 일어나 부활의 삶을 살게 된 애네아스입니다.
죽은 타비타를 살리는 장면도 감동입니다. “타비타, 일어나시오!” 말한 후 눈을 뜬 타비타를 일으켜 세웁니다. ‘일어나라’는 말마디는 부활을 상징하는 말마디입니다. 베드로를 통한 주님 말씀의 능력이 이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참으로 오늘 사도행전은 신바람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애네아스가 상징하는 바, 영적 중풍에 걸려 있는 이들이요, 타비타가 상징하는 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죽어있는 이들입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치유해 주시며, “일어나시오.” 말씀하십니다.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시편116,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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