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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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6-06-03 | 조회수1,182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2016년 6월 3일 예수 성심 대축일 제1독서 에제 34,11-16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제2독서 로마 5,5ㄴ-11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 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 루카 15,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번 달에도 특강이나 피정 지도가 많습니다. 저의 일정을 보신 분께서는 이렇게 바빠서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걱정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영성적으로 제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에 특강이나 피정 지도를 할 때 부담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강이나 피정 지도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긴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지요. 즉,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도 있으며, 또한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 저 역시 큰 힘을 얻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돕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아내를 잃은 한 할아버지의 사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뒤에 전혀 모르는 자신보다 스무 살이 더 많은 할머니를 계속해서 업고 다니면서 온갖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업고 다니면서 온갖 수발을 다해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등 위에 없으면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 할머니를 들쳐 업고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여드리는 순간 제 고통이 반으로 줄어요. 저는 할머니를 돕는 게 아니라 사실 나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먼저 줄 수 있을 때, 실제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는 날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와 같이 주님께서는 당신 품을 떠난 죄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주님을 우리 역시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요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비록 그 순간에는 바보처럼 나만 희생하면서 베풀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미래의 시간에서 바라보면 희생과 나눔이 바로 나를 위한 거룩한 행동이었음을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는 소중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산 방법은 독특하다. 절반과 절반이 합쳐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두 개가 모여 완전한 하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조 코데르트) 오늘은 예수성심대축일, 그리고 이번달은 예수성심성월 알아주고 함께하는 마음 영국의 여왕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들에게 영예의 십자훈장을 수여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십자훈장을 받는 사람 중에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당해 팔과 다리 모두를 잃은 병사가 있었지요.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자리에 서야만 했습니다 . 이 병사 앞에 선 여왕은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병사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은 것이었지요. 그래서 여왕은 훈장 수여를 잠시 멈추고 뒤 돌아서 한참동안 눈물을 닦았답니다. 안정을 찾은 여왕이 다시 훈장을 수여하려는 순간, 이 병사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다시 한 번 제 몸을 바쳐서 싸우겠습니다.” 모두 바쳤던 병사인데, 이제 자신의 몸 전체까지도 기꺼이 바치겠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요? 팔 다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는 십자훈장을 받은 것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여왕의 눈물을 통해서 병사 역시 감동을 받은 것이었지요.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고 슬퍼해주는 여왕의 눈물에 그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알아주고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의 희생과 노고만이 최고라는 생각만을 갖고 다른 사람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 성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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