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8.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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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6-08-23 | 조회수1,26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6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제1독서 2테살 2,1-3ㄱ.14-17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3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복음 마태 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저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서 1시간 정도를 달리고 옵니다. 운동으로는 최고라는 것을 10년 이상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지 않는 한 무조건 나갑니다. 어제 역시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 대로 성지의 초 봉헌을 신청하신 분의 지향을 가지고 봉헌대의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아침부터 너무나 더웠습니다. 자전거를 타서 땀에 흠뻑 젖어있는 상태라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땀 흘려 붙인 촛불이 꺼질 정도로 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닙니다. 바람이 너무나 시원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서 바람을 맞았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 같이 바람 한 점 없이 덥기만 한 날씨에 한 줄기 바람은 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초를 켤 때에 바람이 부는 것은 정말로 불편하게 하고, 또 힘듭니다. 그런데 그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바람이 저를 기분 좋게 하고 그래서 감사하게 합니다. 고통과 시련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면서 그래서 불행하다면서 주님께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어제 아침의 체험을 통해 꼭 고통과 시련이 찾아온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초를 켤 때 힘들게 하는 바람이 오히려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고통과 시련 역시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마음 때문에 일상 안에서의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대신 작은 아픔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서 어렵고 힘들다며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주님 안에서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 문제의 풀이는 너무나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위선자라고 하면서 “불행하여라.” 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곁들이는 양념일 뿐 반드시 꼭 필요한 음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양념에 불과한 것들까지도 십일조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요. 사소한 것들까지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소한 것들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작은 마음 때문에 정작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소홀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즉, 의로움, 자비, 신의와 같이 주님께 연관된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것도 충실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크고 중요한 주님을 놓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보상을 구하지 않는 봉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한다. (마하트마 간디) 페루 리마의 성녀 로사.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중에서) 벼랑 끝 100미터 전.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체험하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 계속 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몰랐습니다. 내게 날개를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밀었던 것이군요. 세상을 훨훨 날라고…….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 성지 후원회원들에게 드리는 묵상노트. 후원회원들이 좋아하셨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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