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항상 감사와 영광 드러내는 삶을 / 연중 제4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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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7-01-30 | 조회수1,11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실 이 내용은 좀 복잡하다. 예수님과 더러운 영들의 대화에서도 그 영들이 ‘군대’라고 하는 표현도 낯설지만, 무엇보다도 그 마귀들이 애꿎은 돼지들에게 들어가 호수에 빠져 죽는 모습이 너무나 이상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어떤 이를 구해 주신다. 그에겐 붙어 있는 많은 귀신이 ‘군대’란다. 그는 무덤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그는 괴성을 지르며 자기 몸을 돌로 치곤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내려오는 것을 막으려고 쇠사슬로 묶어 두었다나. 그는 한 마리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더러움의 상징인 돼지 떼가 물에 빠짐으로써 마을이 정화되었다. 이로써 마을에는 단절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 놀라운 은혜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장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었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 역시 세상논리에 잡혀 그분 ‘자비로운 섭리’를 무심히 여기지는 않을까? 마귀 들렸던 정신 나간 이가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있는 것을 보고는 다들 그만 겁이 났다. 이방인들은 이를 보고 다들 놀랄 수밖에. 그래서 예수님더러 그곳에서 당장 떠나가 달란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를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제압하셨기에. 그래서 그들에게는 예수님은 두려운 분이셨다. 모른다면 이렇게 두려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쇠사슬과 족쇄까지도 부술 정도의 괴력으로 악령에 사로잡힌 이를 치유해 주셨다. 우리는 그분의 이런 한 영혼 구원된 사건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느껴야 할 게다.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밖에. 이로써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고 공동체에는 평화를 안길 수 있다.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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