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7년 2월 8일(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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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02-08 | 조회수1,15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7년 2월 8일 [(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말씀의초대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을 일구고 돌보게 하시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며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시고,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신다.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돌보게 하셨다.> 2,4ㄴ-9.15-17 하늘을 만드시던 날,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4(103), 1-2ㄱ.27-28.29ㄴㄷ-30 (◎ 1ㄱ)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 존엄과 영화를 입으시고, 광채를 겉옷처럼 두르셨나이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당신께 바라나이다. 제때에 먹이를 달라 청하나이다. 당신이 주시면 그들은 모아들이고, 당신 손을 펼치시면 복이 넘치나이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숨을 거두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당신이 숨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온 누리의 얼굴이 새로워지나이다. ◎복음환호송◎ 요한 17,17 참조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7,14-23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선과 악을 아는 나무. 에덴 동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상징입니다.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선과 악의 식별은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는 이성의 교육과 학습의 결과입니다. ’(에로스)가 있다고 합니다. 이 욕구에 속하는 식욕, 수면욕, 성욕의 본성은 그 자체로 선한 것입니다. 인간은 소유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과 격려로 살아가며, 누군가와 사랑을 나눔으로써 존재를 확장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자유의 본성이 사회관계로 확장되어 타인의 본성을 침해할 때, 소유욕, 명예욕, 지배욕으로 바뀌고, 우리 안에 없었던 ‘죽음에로의 욕구’ (타나토스)가 생겨납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 은 없습니다. 애초부터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나무를 심어 주셨고,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낼 악의 단초를 식별해 낼 수 있는 이성의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 이성의 능력이란 인간을 흙의 먼지로 빚으실 때, 그 코에 불어 넣어 주신 ‘생명의 숨’을 뜻합니다. 우리가 숨 쉴 때마다 우리 안에 생명을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식별의 은사가 이성의 자유를 통하여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두 날개와도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이성의 질서를 따르지도 않으면서, 인간 본성의 욕구를 탐닉할 때 죄가 생깁니다. 가톨릭 교회는 죄의 근본이 되는 ‘칠죄종’, 곧 교만, 질투, 인색, 분노, 탐욕, 음욕, 그리고 나태가 모두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이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에게 죄에 빠질 여지를 만들어 두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본성이 생명을 거스를 때 생기는 죄의 결과들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지금 생명과 죽음에로의 본능을 어떻게 식별해 내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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