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15."무엇이 보이느냐"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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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2-15 | 조회수1,16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마르 8,22-26(연중 6주 수)
오늘 <복음>에는 ‘눈먼 이’가 등장합니다.
‘눈먼 이’란 어떤 사람인가?
물론 보지를 못한 이입니다.
마치, 장미꽃을 그 가시로 찔러 상처를 주는 것으로 알뿐, 그 꽃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이입니다.
마치, 불이 자신을 뜨겁게 태워 상처 입히는 것으로 알뿐, 그 주변을 환히 밝혀준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입니다.
자애심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볼뿐, 상처에서 흘러나온 구원을 보지 못하는 이입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요한 1,5), 그 빛을 보지 못하는 이가 바로 눈먼 이입니다.
정녕, 진리이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가 바로 눈먼 이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단순하게 시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와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마르 8,18)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는 ‘육안’,속을 들여다보는 보는 ‘심안’(마음의 눈), 그리고 복음의 빛으로 보는 신앙의 눈인 ‘영안’(영의 눈)입니다.
이는 신앙이 깊어가면서 밝아지는 눈입니다. 곧 복음의 빛으로 보는 눈입니다. 당신 빛으로 빛을 보는 것이기에,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비추듯이, 빛이신 예수님에게서 그 빛을 받아서 보는 눈입니다. <시편>에서,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니다”(시 35,10)라고 노래하듯이,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의 신비를 보는 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의 두 눈에 당신의 ‘침’을 바르십니다. 이는 지난 주 금요일 <복음>이었던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신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에 ‘침’을 발라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혀에 대신 것처럼(마르 7,34),성령의 도유를 말합니다. 곧 영으로 도유되어 치유된 눈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무엇이 보이느냐?”(마르 8,23)
혹 사람들만 보이나요?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만 보이지는 않는지요?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육안’으로 사람의 형상만 보지 말고, ‘심안’으로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보고, ‘영안’으로 그 사람 안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보라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두 눈에 손을 언어주시기를 청해야할 일입니다. 모든 것을 똑똑하게 뚜렷이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겉 형상의 사람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볼 줄 알고, 나아가서 그 사람 안에 구원을 펼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풀 한 포기에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보며, 그분의 말씀에서 하느님 나라와 사랑을 보는 눈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당신을 보는 눈 말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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