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버리면 더 많이 얻는 믿음을 / 연중 제8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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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7-02-28 | 조회수1,21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선물은 주는 이의 맘에 기쁨과 사랑이 담겨야. 기꺼운 마음으로,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상대방의 기쁨을 내가 먼저 맛보는 거다. 하지만 뇌물에는 그 안에 상대방이 아닌 나의 이기적 욕심이 자리 잡는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 계산에, 행여 기대한 만큼의 대가가 없다면 서운함을 갖는 게 선물과는 다르리라. 물론 아무 조건 없는 순수한 선물은 없을 수도. 순수하게 전한 것이라도, 언젠가 상대방이 다른 식으로라도 그것에 대한 보답을 줄 것을 기다리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니, 사실 우리는 뇌물 같은 선물을 주고받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고 모든 걸 버리고 따랐지만,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세속적 대가를 은근히 기대했을 게다. 그리고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과연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과 진정 그들이 얻게 될 것에 큰 차이가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두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 때문에 집이나 가족, 토지를 버린 이는 현세에서 백배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마르 10,28-31 참조)’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한 분이 계셨는데, 그는 중년까지 벽지 학교만 다녔단다. 도시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늘 변두리였다. 어느 해에는 본당 교우분의 협조로 제법 큰 도시로 갈 수 있었지만 그 발령 역시나 벽지였다. 그런데 그 후 벽지 근무자에게는 특별대우가 실시되어 그간의 근무 인정으로 ‘동료보다 더 빠른 승진’을 얻었단다.
시련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첫째가 꼴찌 되는 일’은 당하지 않을 게다. ‘누구든지 나나 복음 때문에 가정과 부를 버린 이는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라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때로는 큰 부담을 느낄 게다. ‘집과 가족을 버릴 정도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씀에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조건을 단 그들에게 새 조건을 주었다. 누구든지 ‘당신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모든 걸 버린 이가 얻는 놀라운 선물을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측근에서 따른 이들만이 아닌, ‘누구든지’ 예수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사는 이들에게 약속된 축복이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가. 혹시 우리의 기도와 봉사들이, 때로 조건이 너무 많이 달린 뇌물은 아니던가? 우리 셈법과 다른 하느님 셈법에 ‘첫째가 꼴찌,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 가운데, 나는 어느 쪽에? 사실 예수님을 따르고자 몇 명의 가족을 멀리한 이는 몇 백배가 넘는 신앙의 형제를 얻었을 게다. 그리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그 나눔으로 영적인 굶주림을 마음껏 채우고, 외로운 이는 우정으로 심신이 든든해질 게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얻는 보상이리라. 버리면 더 많은 걸 얻는 이 말은 우리가 꼭 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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