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7년 3월 7일(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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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03-07 | 조회수1,14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7년 3월 7일 2017년 3월 7일 화요일 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은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룬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니,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제1독서◎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55,10-11 말씀하신다.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 4-5.6-7.16-17.18-19 (◎ 18ㄴ 참조)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복음환호송◎ 마태 4,4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5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이렇게 기도하여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점은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남을 용서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끊임없이 용서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잘못을 범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끊임없이 용서받았습니다. 나 자신의 잘못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의 조그만 편견 때문에 이웃에게 큰 불편을 준 일부터, 알게 모르게 범한 죄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죄들도 많지요.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내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합리화하지만, 남의 잘못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낸 적도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사람의 첫 번째 반응은 ‘용서’입니다. 용서해 주는 마음이지요. 나 자신도 늘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많이 용서받는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만일 남을 용서할 마음 없이, 건성으로 ‘주님의 기도’만 바치며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청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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