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 성월 특집] 가톨릭 장례문화
삶과 죽음을 넘는 영원한 생명… 주님 안에서 부활의 희망 담다 - 라파엘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초대교회는 죽음을 ‘천상탄일’이라 불렀다.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 새로 태어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우셨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상장 예식에서 드러난다. 예식 안에서 이승에서의 삶과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묵상을 통해 우리는 부활과 참된 삶에 대한 동참을 확신한다. 가톨릭교회의 상장례는 죽음의 예식이 아니라 참된 삶을 드러내는 희망의 예식인 것이다. 초대교회의 장례예식 유다교의 관습을 따랐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 곡을 반복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유다교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예식이 정착됐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장례 예식에서 이교적인 관습을 없애고 부활의 기쁨이 드러나도록 애썼다. “그리스도인들은 장례식에서 슬픔과 서러움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주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교부 아리스티데스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장례를 치를 때 큰 소리로 슬피 울지 않고 찬미가와 시편을 노래하며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를 떠나보냈다. 5세기에 쓰인 「교계제도」에 따르면 장례식 참석자들은 죽은 이와 입을 맞추고 기름을 바르는 작별 예식을 거행했다. 친교의 표지인 입맞춤은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 기름 바름은 세례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파스카가 장례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8세기 이후 속죄와 참회의 신학이 발달하면서 장례예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클뤼니 수도회의 장례 예식서에는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 무서운 징벌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내용이 드러난다. 이 시기에는 죽은 영혼을 위한 속죄의 표시로 위령 미사가 집전되고, 장례도 죽은 영혼의 죄를 씻는 속죄가 중심이 됐다.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이후 간행된 「로마예식서」(1614)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전 예식서에 수록된 시편과 파스카 성격을 띠는 기도문도 줄이는 대신 구원에 대한 불안을 강조하는 시편과 속죄 기도문을 첨가했다. 또한 흰색이었던 제의와 제구도 검정색으로 바꿀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나고 나서야 파스카 성격을 드러내는 장례 예식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나온 전례헌장 제81항에는 장례 예식의 개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돼 있다. “장례식은 그리스도인 죽음의 파스카 성격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야 하며 각 지역의 환경과 전통에, 또한 전례 색상에 관한 것에도 더 잘 부응해야 한다.” 이에 주교회의는 1970년 3월 25일 개정된 예식들을 합본한 「가톨릭 예식서」를 간행했다. - 11월 2일 서울 용산성직자묘지에서 신자들이 위령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한국천주교회 첫 예식서 「천주성교예규」 유교와 불교, 무교(巫敎) 등이 섞여 있는 조선의 상장 관습에서 천주교 신자가 가톨릭교회의 정신과 형식대로 상장례를 거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 교리에 따른 장례를 치르는 것에 소극적인 분위기도 형성됐다. 이에 선교사들은 예식서 편찬을 서둘렀다. 당시 한국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상장례를 사제가 집전할 수 없기에 신자들만으로 거행할 수 있는 기도문과 예식서가 절실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사회 환경과 정서를 고려하면서도 교회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형식과 내용이 분명히 드러나고 모든 신자들이 어렵지 않게 거행할 수 있는 예식서가 필요했다. 그렇게 발간된 것이 「천주성교예규」다. 다블뤼 주교가 한문본을 번역한 천주성교예규는 한국교회의 첫 예식서로, 1859년 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판본 제1권은 크게 선종을 돕는 공부, 임종을 돕는 규식, 병자를 제성하는 규식, 임종경으로 구분된다. 선종을 돕는 공부에서는 이웃의 교우가 임종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이 아닐지라도 지체하지 말고 찾아가 교회 가르침대로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도록 권면하고 함께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2권은 크게 상장(喪葬)규구, 상장예절, 유동(幼童) 장사예절, 상례문답으로 구분된다. 이 중 상장규구에서는 상장례를 주관하고 참례하는 신자들의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유가족은 교회 규정대로 상장례를 치러야 하며 염습과 입관이나 하관할 때 택일을 하는 것과 같은 외교인들의 상장례 관습을 따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장례미사, 출관시 예절(십자가 받들고 경을 낭송), 무덤 앞 십자가를 세우는 지침에 대해서는 ‘시세에 따라 진행할 것’을 명시, 무리한 진행보다는 주변의 상황과 분위기를 고려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이는 평신도 중심으로 상장예절을 진행해야 하는 한국교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죽은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며 주님 안에서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현대 한국천주교 장례문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들이 논의됐다. 여기서는 장례에 대한 기본 시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교회는 상장 예식을 통해 죽은 이를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파스카의 신비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길러 주며, 자모이신 교회의 사랑과 신앙의 위안을 제공해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며 동시에 참석자들이 삶과 죽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게 함으로써 진실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준다.”(「사목회의 의안 4 전례」 144항) 이 사목 회의를 통해 건의된 내용들은 2003년 발간된 「상장 예식」에도 적극 반영된다. ‘영원한 생명을 찾아가는 우리의 부활 신앙을 북돋워 주고, 교우들의 헌신적인 상례 봉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복음화에 도움이 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상장 예식」은 보편 교회의 상장례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우리나라 상장례의 미풍양속을 복음 정신으로 재해석해 수용하고 있다. 보편교회의 상장례에 없는 우제(虞祭), 면례(緬禮), 제례(祭禮) 등의 예식을 수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육신의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면 화장을 허용, 화장과 관련된 제반 예식과 기도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세례받은 어린이 장례미사와 받지 않은 어린이 장례까지 수록해 어린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의 전통을 따랐다. 교회 안에서 장례와 관련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연령회다. 신앙의 자유를 찾게 된 1886년 한불조약 이후 설립된 연령회는 산업화 이후로 규모가 확산되면서 본당 신자가 선종했을 때 수행해야 할 갖가지 업무를 맡았다. 위령 기도, 예식 준비와 참여, 환자 호스피스, 유족 돌봄 등을 통해 복음전파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22년 11월 13일,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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