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사순 제4주일)-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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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민지은 | 작성일2017-03-26 | 조회수1,21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7년 3월 26일 사순 제4주일 오늘 주제는 주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그 의미를 찾아 보면 ‘눈 뜬 장님’라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9장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주님께서 고쳐주시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른 다음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눈을 씻어라.’(요한 9,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가서 눈을 씻으니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웃사람들은 그가 전에 눈도 멀고 거지였는데,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인가 아닌가’, 또는 ‘비슷한 사람인가’하며 서로 말들을 합니다. 눈을 뜬 장본인이 그 사람들 앞에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라고 말하며 자기라고
밝힙니다. 그들은 그가 눈을 뜬 사실에 대해서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가니 그가 치유받은 날이 안식이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바리사이들 사이에도 병을 고쳐주신 분을 두고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라며 논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눈을 뜬 사람에게“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라고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죄인 취급하는 소경이 눈을 뜬 모습을 보면서도 치유된 사실을
믿지 않고 그의 부모에게 그가 정말 소경이었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들을 두려워하는 부모이지만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고 말합니다. 결
국 유대인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눈을 뜬 사람을 결국 회당에서 쫒아냅니다. 그가 쫒겨났다는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에게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라고
질문하시고 당신이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밝히시자 그는 주님께 “주님, 저는
믿습니다.”(38절)라고 고백하며 경배합니다. 그는 육신의 눈을 뜨고 이어서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뵙는 영혼의 눈도 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이사야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이사 42,6-7)에서 “민족들의 빙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라는 예언이 태생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현실로 성취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초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소경도 예수님도
죄인으로 몰고 가며 배타적인 바리사인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을 만나자리에서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41절) 어떤 사람들이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못 보는 것일까요? 바리사이처럼 율법에 옥죄어
틀 속에 갇힌 사람? 밴댕이 속처럼 좁은 사람? 오만과 교만이 가득 찬 사람일까요? 광산에서 일하시다다 매몰되어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겪으신 분들의 공통적인
회상은 어둠속에 갇힌 ‘두려움’라고 합니다. ‘이 순간이 어둠속에 그대로 갇히면 어떻게 하나?’하는 절망의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가고
어디에선가 구조의 소리가 들리거나 희미한 불빛이 비칠라치면 그제서야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소경 뿐 아니라 어둠에 갇힌 이들은 빛을 통한 세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리사이들은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기들이 볼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눈뜬 소경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예수님도 눈을 뜬 소경도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그들에게는 태생 소경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의지할 수 없어 거지생활을
해야하는 그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안식일에 치유되어서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며 육신의 멀쩡한 눈을 갖고 우리도‘잘 보인다.’라는 사실만 강조하고
정작 내 이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 영혼의 눈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듯 오랜 시간 함께 했다고 해서, 서로 친하다고 하면서,
정작 내 이웃의 아픔이나 고통을 지나치지나 않는지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 어설픈 경험을 갖고 마치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으며 내 이웃을 함부로 맞지도 않는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자신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은총의 시기입니다. 우리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그래서 굳고 편협한 자신을
기준으로 이웃에게 문을 닫거나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라고 우리를 훈계하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도록 합시다. 그분은 어둠과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 하시는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한 빛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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