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30."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면서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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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4-30 | 조회수5,37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루카 24,13-35(부활 3주 주일)-생명주일
오늘은 부활 3 주일이요, 동시에 생명주일입니다.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4)
그리고 예수님을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신 분”(사도 2,27)이라고 고백합니다.
<제2독서>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음”(1베드 1,28)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죽음에서 일으켜지신 당신 부활의 모습을 드러내주십니다. 곧 부활의 모습을 통하여,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과 슬픔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설명해 주시며”(루카24,27), 당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 생명을 구하는 생명의 존귀함을 깨우쳐주십니다. 그리고 생명의 잔치인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들어 떼어 나누어주시면서”(루카 24,30), 생명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고 확신시켜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루카 24,31)
오늘 우리의 눈이 열려야 할 때입니다. 생명을 보는 눈이 열려야할 때입니다. 당신이 주신 생명을 존귀하게 보는 눈이 열려, 영원한 생명인 부활을 이 세상에 증거 해야 할 때입니다. 죽음과 악이 판치는 이 세상에,생명을 존중하는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우리는 하느님은 생명이심을 압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생명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을 압니다. 곧 “생명은 하느님의 숨결이며 선물”임을 압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존귀함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그 존귀함에 대한 존중은 다름 아닌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니, 형제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은 다름 아닌 생명의 존귀함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도외시 되고 있습니다.아니,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가 도처에 팽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생명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인간 생명마저도 그것의 도구가 되어버리기 일수입니다. 돈으로 사람의 생명을 사고팔기도 합니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타인의 생명을 도구로 삼고 짓밟는 극도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의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회문헌 <생명의 복음>을 통해, 현대사회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출현시킨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하느님과 인간의식을 몰아냈다” “세속주의와 물질주의는 하느님을 빼앗아버렸고, 결국 인간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마저 빼앗아버렸다” “인간의 생명을 더 이상 하느님의 빛나는 선물로,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따라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존중해야 할 ‘신성한 어떤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객선 “세월호” 참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어처구니없는 이 참사에 눈물 흘리고 있지만,사실은 우리 모두가 공범자인 셈인 것입니다. 사실, 이 참사는 돈의 가치가 지배당하고 생명의 가치를 경시해버린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걸터앉은 우리 모두의 무사안일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우리의 민낯인 셈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처럼, 죄와 제도화 된 죄의 구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회문헌 <사회적 관심>에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생긴 죄뿐만 아니라, 죄의 구조를 거부하고 막아야 된다.’
이는 자신만 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넘어서, 죄로 형성되어 있는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에 대한 사명도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러한 우리 사회는 바로 우리 모두가 만들어 놓은 공동생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먼저 참회하고 생명의 가치를 되찾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그 일이 “생명이요 부활”이신 우리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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