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17."내 안에 머물러라"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
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5-17 | 조회수5,30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요한 15,1-8(부활 5주 수)
오늘 <복음>은 단지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가 아닙니다. “참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우리 공동체는 단순히 공동체임을 넘어서, 참된 공동체인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서, 예수님의 진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참된 진리는 “참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곧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관계를 “붙어있다, 머물다, 열매맺다”라는 동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머물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머물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는 우선적으로 “붙어있음”을 말합니다. 곧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다른 데서가 아닌 바로 그 포도나무로부터 수액을 받아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잘려져 불에 태워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붙어있되, “열매를 맺는 이”라야 “머물러 있는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머물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그분께 ‘붙어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열매 맺으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워드림이요, 그분의 말씀의 권능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참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요, 그분과 결합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오로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 분과 한 영이 된다.”(1코린 6,17)
그러기에, “머물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상호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로 ‘붙어있음’말합니다. 곧 “상호내주 혹은 상호공유의 관계”를 말합니다. “상호 내주 혹은 공유”는 상호 안에 단순히 머물러 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벌리는 역동적인 활동이 벌어지는 ‘상호 친교’요, ‘상호교제’요,‘상호 교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그의 둘째 편지>에서 밝히듯,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활동하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그분과 이토록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공동본성”(Connaturality) 결합을 두고, 천사적 박사라 불렸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경탄하여 이렇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 우리가 하나라는 걸 그토록 모르는가?”
바로 이 ‘공동본성’이 우리에게 신적 진리, 참된 진리를 가능케 하는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가 신적 진리로써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스런 참 사랑, 하늘스런 참 생명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토마스 아퀴나스는 ‘공동본성에서 오는 사랑의 지혜, 하느님 사랑으로 주어지는 신적 지혜 혹은 관상’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신적 진리, 참된 진리에 참으로 머물러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아본다면,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가지는 나무에 속해 있을 뿐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지가 나무를 지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존속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열매를 맺으실 수 있는 그분께 승복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라야, 참된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지 붙어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내주하신 그분의 수액을 받아 마시며, 말씀 안에 머물고, 사귀고,교제하면서, 당신께서 열매를 맺으시도록 해 드려야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도 바오로처럼,“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