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4."성령을 받아라." -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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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6-04 | 조회수5,52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요한 20,19-23(성령강림 대축일)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 <말씀 전례>에서는 성령이 오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늘에서 세찬 바람의 소리와 불과 혀의 모양으로, 곧 놀라운 모습으로 내려오십니다. <복음>에서는 닫혀 진 문을 뚫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러운 숨결의 모양으로, 곧 고요한 모습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의 활동에서,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만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늘 문을 열거나, 땅의 문을 열거나 모두 닫혀 진 문을 열면서 벌어집니다. 곧 성령의 활동은 문을 여는 일이다. 성령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닫혀 진 문을 부수고, 가려진 장막의 휘장을 찢고, 죽음에 갇힌 무덤을 풀며, 우리의 굳은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묘한 것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열리고, 닫힌 문은 마음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네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다른 먼 곳이 아니라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 성령께서는 지금 여기에 오시어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베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분의 몸인 신비체인 까닭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비체’는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을 말합니다. 곧 다양성과 단일성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에 의해 지탱되고 존속됩니다. 그 다양성을 서로 결합하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이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평화”를 주시며,성령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로써 구원 역사의 두 단계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예수님께서 성부에게서 세상에 파견되어 오신 ‘성자의 시대’요, <둘째 단계>는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신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로써 ‘협력자’이신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새 백성이 탄생되고,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성령의 활동으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인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닫혀 진 문’을 열고 들어 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닫혀 진 문’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문을 잠가 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닫혀 진 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요한 20,1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닫혀 진 문’을 뚫고 들어오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보통으로 표현하던 이 인사는 이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인사가 됩니다. 이제 이 평화는 주님의 축복이요, 선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방황이요 두려움이라면, 예수님의 현존이 곧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 이제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고, 혼란스러운 무질서는 질서를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포와 두려움에 ‘닫혀 진 마음의 문’을 열고서,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으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요한20,21-22)
이제 ‘평화의 전령’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평화의 도구, 구원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이제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이 평화를 서로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세상 안에 이 평화를 건설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그러나 이 ‘평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이 평화는 우리가 이루는 우리의 평화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시는 ‘주님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힘’으로만 이루어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협조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이 성령을 선사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를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그러니, 성령께서는 이 평화를 ‘용서’를 통해 이루십니다. 그러기에,성령께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고,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도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평화를 주시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성령강림절! 오늘, 우리는 이 감격스런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허용하고,하느님의 현존에 푹 젖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용서의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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