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8."네 이웃을 너 자신 처럼 사랑해야 한다. " -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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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6-08 | 조회수6,67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마르 12,28-34(연중 9주 목)
예수님께서는 <신명기>(6,4-5)의“하느님 사랑”과 <레위기>(19,8)의“이웃 사랑”을 한데 묶으십니다. 곧“하느님 사랑”은 “형제 사랑”안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새로운 관점”과“그 변화”를 요구합니다. 곧 참된 사랑이라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은 서로 이율배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이웃 사랑”은 곧 “하느님 사랑”이요, “하느님 사랑”은 당연히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괴리되어 있지도, 서로 갈등관계에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실현시켜준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새로운 관점”은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새로운 탄생”에 비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이 “새로운 관점”은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합니다. 따라서 이 “새로운 관점”은 곧 “새로운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어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메꾸는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혹은 더 열성적이거나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하는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 중심과 기준 자체를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기준틀 자체인 페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전인격의 변화, 곧 새로운 인격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이라고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곧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 한 자매”라는 관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에페 1,10; 1고린 1,30참조)일 뿐, “남”이란 애시 당초 없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이 됩니다. 또한 “이웃 사랑”은 어떤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한 몸”으로서의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곧 “이웃 사랑”이요, “하느님 사랑”이 됩니다. 더 적극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이웃”이 곧 “나”요,“나”가 곧 “이웃”이 됩니다. 따라서 이웃의 아픔이 바로 자신의 아픔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사랑”은 곧 “이웃 사랑”이요, “이웃 사랑”은 곧 “하느님 사랑”이 됩니다.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느님”이 곧 “이웃”이요, “이웃”이 곧“하느님”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 형제가 곧 하느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빌려본다면, 남편에게는 아내가 하느님이요, 상인에게는 손님이 하느님이요, 본당신부에게는 본당신자들이,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공동체의 형제들이 하느님입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저는 아직 제 형제들을 그렇게 섬지도 봉사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이 “새로운 관점”, 곧 “새로운 탄생”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자기”를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나”가 중심인 “이웃 사랑”이 아닌 “내 몸”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요, 나아가서 “남”인 이웃이 아닌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내 이웃을 내 몸같이’, 내 ‘이웃을 하느님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의 계명”이 “새로운 관점,새로운 탄생, 새로운 자기”에로의 변화임을 말해줍니다. 곧 사랑은 변화와 실천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어짐을 말해줍니다. 이를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요한 4,12)
이것이 곧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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