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29."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너는 이갓을 믿느냐?"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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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7-29 | 조회수3,03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요한 11,19-27(연중 16 토)
오늘 <복음>은 우리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로 초대합니다. 그것은 “나는 안다”에서, “나는 믿는다.”에로의 초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구세주임을 안다’에서, 이제 바로 ‘그분이 생명이요 부활임을 믿는다.’에로의 초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빠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에게 찾아오십니다.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타가 먼저 집밖으로 뛰쳐나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
이 인사말에는 예수님께 대한 마르타의 원망과 섭섭함을 묻어있습니다. 사실 그럴 법도 합니다. 임종 때에도, 장례식 때에도 소식을 전했건만 오시지 않으시더니, 이제 사흘이 지나서야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몹시도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라는 그분의 권능을 알고 있다는 고백에는 예수님께 떼를 쓰는 마르타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압니다.”(οιδα)라고 고백할 뿐, “믿습니다.”(πιστιω)라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라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3) 하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뿐,“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죽은 오빠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믿지는 못하였나 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르타를“부활에 대한 믿음”에로 초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활과 생명을 너에게 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는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먼저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을 때라야, 그 믿는 이에게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활과 생명은 “믿는 이”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활과 생명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은 그 믿음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이미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여전히 동문서답과 같은 응답을 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믿음”을 고백하지만, 단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힘주어 고백할 뿐, 여전히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다시 한 번 “믿음”에 대한 일깨움이 있게 됩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11, 40)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너는 이것을 믿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가 아닌, “예,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예수님께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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