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31."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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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7-31 | 조회수3,57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마태 13,31-35(연중 17 월)
오늘 우리는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태 13,31)
‘겨자씨’는 유다문학에서 ‘작은 것’의 전형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사실,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밭’에 심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면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마치 십자나무가 모든 인류를 품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거창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가르치십니다. 아니, 오히려 가장 작은 모습으로 오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당신께서도 아주 작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대체,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오셨을까? 아니, 왜 작은 모습으로 오실 수밖에 없으셨을까?
사랑에 빠져본 이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사랑에 빠져보지 않으면 그것은 알아들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대중가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김수희: 애모)
이처럼, 사랑에 빠진 자만이 자기가 사랑하는 이 앞에서, 결코 높아지거나 커질 수 없고 늘 그보다 작은 자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하고 알게 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놓고 작은 자로 그를 위해 낮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작은 모습으로 종이 되어 오신 이유는 진정으로 우리를,인간을 사랑하신 까닭일 것입니다.그래서 사랑하는 우리들 앞에 작은 자로 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작은 자인가? 진정 작은 자의 모습인가?
만일, 지금 내가 형제 앞에 작아져 있다면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겨자씨는 작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성장해갑니다. 그러기에 비록 우리 안에,혹은 형제들 안에 뿌려진 하늘나라가 확연히 노출되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조용히 드러나지 않는 채로 성장하고 있음을 볼 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미약해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큰 나무로 자라나고 뭇 새들이 날아와 깃들기를 바라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공동 사명입니다.
“깃들다”(κατασκην?ω)는 단어의 뜻은 “밑에 거주하다” 곧 “장막에 들어가다”,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새들이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날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안전하고 영속적인 거처를 마련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교회라는 혹은 올리베따노회 수도 가정이라는 생명의 말씀나무에 깃든 한 무리의 새 떼입니다. 한 둥지를 틀고 사는 새 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미 한 그루의 생명나무입니다. 당신께서 뿌려진 생명의 씨앗이 자라난 나무입니다. 곧 사랑으로 피어난 나무입니다.
한편, 겨자씨의 비유가 하늘나라의 외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누룩의 비유는 내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누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위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랑으로 반죽되는 것이 ‘누룩의 비유’입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들어가 자기의 능력을 전체에 돌려줍니다. 그러나 먼저 반죽되어야만 하고, 섞여야만 됩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 섞일 뿐입니다. 그리고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룩을 밀가루 “속에”집어넣었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누룩을 우리 ‘속에’ 받아들여야할 일입니다. 그러면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모조리 부풀리듯이, 갈라진 내부를 통합할 것입니다. 그렇게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한 우리 역시 누룩이 되어 형제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하늘나라의 복음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처럼,누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위력입니다. 그러니, 비록 우리들을 통하여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하늘나라의 복음은 세상을 해방시키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모조리 부풀리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겨자씨가 이미 ‘우리’라는 밭에 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누룩이 이미 ‘우리 공동체’라는 밀가루 안에 넣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맘껏 자라나고, 맘껏 부풀어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안에 넣은 누룩이 제 속을 파고들게 하소서! 섞여들지 못한 까닭에 부풀어 오르지 못하지 않게 하소서! 제 안에 뿌려진 씨를 묻어두고만 있지 않게 하소서! 죽지 못한 까닭에 싹을 피우지 못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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