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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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08-31 | 조회수2,516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7년 8월 31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제1독서 1테살 3,7-13 7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 8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기를 빕니다.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태 24,42-5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고대 스리랑카의 아쇼카 왕의 동생은 쾌락을 좇으며 동시에 권력을 탐했다고 합니다. 늘 권력만 있으면 어떤 욕망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형에게 왕위를 물려받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왕은 동생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목욕하러 갈 때 목욕탕 밖에서 왕관과 옷을 일부러 놔두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장관에게 동생과 함께 그 앞을 지나기면서 왕관과 옷을 입어보라고 유혹하라고 한 것이지요. 알면서도 왕위에 오르고 싶었고, 또 형이 없으니 한 번 써보고 입어 보면 어떠냐는 생각에 왕관을 쓰고 옷을 입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형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재판에 넘어갔습니다. 형인 아쇼카 왕은 중범죄를 지었기 때문에 동생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면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이러한 말을 덧붙입니다. 7일 동안 왕 노릇을 하게하고 사형집행을 하겠다.”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실컷 즐겼느냐?” “며칠 후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판에 어떻게 즐길 수 있겠습니까? 즐기기는커녕 잠도 잘 수 없었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27년 후든 결국 죽음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판국에 어떻게 세속적인 쾌락에 빠져들 수 있느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즉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신세인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절대로 죽음이 나에게 오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죽음이 멀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은 생각하지 않은 때에 분명히 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다른 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내 자신의 죽음도 떠올려야 하는데,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고 또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제대로 봐야 합니다. 분명히 죽음을 향해 우리는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늘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일찍 가족들을 누가 봐도 그렇게 행복한 우리들은 어려우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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