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5."그 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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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9-05 | 조회수1,36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루카 4,31-37(연중 22 화)
오늘 <복음>은 이 “희년선포”에 이어, 메시아로서의 당신 “권위”를 드러내십니다. 곧 갈릴래아의 가파르나움에서 안식일에 가르침과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 ‘메시아의 권위’를 드러내십니다. 그들이 놀란 것은 구마치유가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곧 그분의 말씀의 권위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4,34)
그것은 한 마디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 4,35)
그러자,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 내동댕이쳤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습니다.”(루카 4,35). 여기서 우리는 “한가운데”라는 부사는 우리를 하느님의 현존에로 데려다 줍니다. 이사야와 즈카리아 예언자는 말합니다. “너희 한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는 위대하시다”(이사 22,6) “정녕 이제 내가 가서, 너 한가운데 머무르리라”(즈카 2,14)
앞의 희년선포 장면의 마지막 구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루카 4,30), 곧 당신의 현존을 그들 가운데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인간은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악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혀로 하와를 속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와를 속였던 악마의 그 혀 놀림을 중지시키며 그에게서 쫓아내십니다. 곧 당신의 현존에로 회복시키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으로 행하신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치유는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희년선포와 마찬가지로 원죄 이전의 에덴으로의 복귀를 드러내줍니다. 생명이 충만한 상태애로의 되돌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죽이거나 제거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귀는 언제든지 또 다시 침범하고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완전한 문제 해결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물러가게 할 뿐입니다. 마귀는 또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이는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당신의 권능에 의탁하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당신 안에서 깨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도록 합시다.”(1테살 5,5-6)
당신과의 관계맺음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단지 마귀를 쫓아내는 데에 있기보다 생명과 빛이신 당신의 권능 안에 머물라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악마를 쫓아내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구마자들도 그러한 일을 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것은 단지 악마를 쫓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몹시 놀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이 나가지 않는가?”(루카 4,36)
그렇습니다. 그들이 몹시 놀랐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이 이루어지는 권능과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사실, “권위”(exusia)라는 말은 ‘힘’이란 뜻으로 하느님께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것은 발설된 말씀이 말씀한대로 이루어지는 힘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허황되지 않고 곧 실재가 되기에 그 말씀이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힘이 실려 있어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드러낸 것입니다. 곧 “말씀”이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면서, 당신 스스로의 “말씀”으로 명령하실 뿐, 다른 누구의 이름을 빌어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말씀이 “권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당신이 바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구마자들은 자신의 권능이 아니라 누군가의 힘을 빌려 쫓아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교란시키고 분열시키는 온갖 거짓의 혀 놀림을 멈추고, 어둠을 몰아내야할 일입니다. 그것을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의 힘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마기도를 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명하는 것입니다. 곧 말씀이신 그분의 권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라고 하면서 자신 안에 빛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빛이신지라 어둠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 안에 말씀의 권능과 빛이 들게 되고 그분의 현존에 머물게 되면, 어둠은 물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권능과 빛이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러기에 빛 안에 머물게 되면, 어둠은 아예 침범하지조차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도록 합시다.”(1테살 5,4-6)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말씀의 권능과 힘, 그 가르침의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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