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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12 -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2 조회수1,90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09 12 () 가해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Tuesday of the Twen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
동정 마리아 성명 선택 기념일)

콜로새서 2,6-15 / 코린토 16,1-11
루카복음 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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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2,6-15

형제 여러분,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9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권세와 권력들의 머리이십니다. 11 여러분은 또한 그분 안에서 육체를 벗어 버림으로써,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Reading 1


Col 2:6-15

Brothers and sisters:
As you received Christ Jesus the Lord, walk in him, rooted in him and built upon him and established in the faith as you were taught, abounding in thanksgiving.
See to it that no one captivate you with an empty, seductive philosophy according to the tradition of men, according to the elemental powers of the world and not according to Christ.

For in him dwells the whole fullness of the deity bodily, and you share in this fullness in him, who is the head of every principality and power.
In him you were also circumcised with a circumcision not administered by hand, by stripping off the carnal body, with the circumcision of Christ.
You were buried with him in baptism, in which you were also raised with him through faith in the power of God, who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even when you were dead in transgressions and the uncircumcision of your flesh, he brought you to life along with him, having forgiven us all our transgressions; obliterating the bond against us, with its legal claims, which was opposed to us, he also removed it from our midst, nailing it to the cross; despoiling the principalities and the powers, he made a public spectacle of them, leading them away in triumph b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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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6,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Reading 1


Brothers and sisters:
How can any one of you with a case against another dare to bring it to the unjust for judgment instead of to the holy ones?
Do you not know that the holy ones will judge the world?
If the world is to be judged by you, are you unqualified for the lowest law courts?
Do you not know that we will judge angels?
Then why not everyday matters?
If, therefore, you have courts for everyday matters, do you seat as judges people of no standing in the Church?
I say this to shame you.
Can it be that there is not one among you wise enough to be able to settle a case between brothers?
But rather brother goes to court against brother, and that before unbelievers?

Now indeed then it is, in any case, a failure on your part that you have lawsuits against one another.
Why not rather put up with injustice?
Why not rather let yourselves be cheated?
Instead, you inflict injustice and cheat, and this to brothers.
Do you not know that the unjust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Do not be deceived; neither fornicators nor idolaters nor adulterers nor boy prostitutes nor sodomites nor thieves nor the greedy nor drunkards nor landerers nor robbers will inherit the Kingdom of God.
That is what some of you used to be; but now you have had yourselves washed, you were sanctified, you were justifi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in the Spirit of our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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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Gospel


Lk 6:12-19

Jesus departed to the mountain to pray, and he spent the night in prayer to God.
When day came,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self, and from them he chose Twelve, whom he also named Apostles:
Simon, whom he named Peter, and his brother Andrew, James, John, Philip, Bartholomew, Matthew, Thomas, James the son of Alphaeus, Simon who was called a Zealot, and Judas the son of James, and Judas Iscariot, who became a traitor.

And he came down with them and stood on a stretch of level ground.
A great crowd of his disciples and a large number of the people from all Judea and Jerusalem and the coastal region of Tyre and Sidon came to hear him and to be healed of their diseases; and even those who were tormented by unclean spirits were cured.
Everyone in the crowd sought to touch him because power came forth from him and healed them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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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12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앞두시고, 또는 기적을 이루신 이후에 언제나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를 다시 세우시려는 상징적인 의미로 열두 제자를 뽑으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제자가 되려면 당대의 명망 있는 율법 교사나 바리사이들을 찾아가는 형태였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기도하시고 당신 친히 열두 제자를 뽑으십니다.
사도들은 ‘파견된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뽑힌 이들이며, 이들의 이름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출신들이 포함됩니다. 어부, 세리, 열혈당원, 심지어 예수님을 배신한 이의 이름도 포함됩니다. 처음으로 부름 받은 열두 사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만 인간 공동체가 지닌 교회의 다양성과 불완전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듯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하신 첫 번째 행위는 더러운 영들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열두 사도의 선택과 파견이, 망가지고 흩어진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다시 세우시고 하느님 백성을 치유하시려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언제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이며, 그분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와 열정이 엿보입니다. 기도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예수님의 말씀과 삶 안에 뿌리를 내려 나를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기 위한 수행의 길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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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07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시어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변덕스럽고 나약하다는 것을 잘 아시기에, 당신의 선택이 잘못될까 봐 기도하신 것입니까?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는 일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므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깊은 친교가 필요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시려고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사람들을 뽑아 사도로 파견하셨습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 이루어진 결정은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며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며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하느님의 능력이 당신에게서 나옴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선택할 때,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주님께서는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선택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전하는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의 직분을 주님 안에서 성실히 수행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밤샘 기도는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이 주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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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0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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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09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기대처럼 고상하고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사사로운 욕심에 물든 세속의 복사판이라고 실망하거나 교회를 멀리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그러한 고민이 어제오늘이 아니라,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숙명처럼 끌어안았던 과제라는 것을 엿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속적 탐욕에 일그러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 참으로초월적순간들이 존재함을 감지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간의 어떠한 죄와 약점으로도 손상될 수 없는 초월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면, 음악의 감동을 떠올리면 좋을 것입니다. 음악에 깊이 감동할 때면 세속적 시간과 공간과 행위 속에 초월이 스며 있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신앙과 숭고한 음악이 모두 초월과 맞닿아 있기에, 음악의 아름다움이 매개가 되어 신앙에 다가가고, 깊은 신앙을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에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과 음악에 존재하는 초월적 아름다움이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 피어날 수 있다는 좋은 보기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세속적이고 경박한 생활 환경 속에서도 신앙에서 빛나는 초월의 광채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무리 친근하고 단순한 음률이라 할지라도, 한없이 명랑하고 쾌활한 리듬이라 할지라도, 더없이 깊은 슬픔의 곡조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언제나 순수한 초월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도미니코회의 한 수도자는 모차르트 음악의 종교적 힘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여기에서는 침묵이 지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언젠가 떠올랐던 가장 순수한 희망, 가슴을 있는 대로 에는 탄원을 듣는다.” 그러면서 슬프면서도 영롱한 모차르트의클라리넷 협주곡2악장을 들어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를 소리 없이 채우는, 약점투성이인우리를 악기 삼아 주님께서 연주하시는 초월적 음률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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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10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언젠가 이러한 내용의 공익 광고를 들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태극기를 다는 국경일 하루만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국가 대표 축구 경기를 보는 90분만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순국선열을 위해 묵념하는 1분만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독도에 관한 뉴스를 접하는 그 짧은 순간만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나라 사랑은 어떻습니까?”
이 광고를 들으며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지 반성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위의 내용을 이렇게 바꾸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성체를 모시는 그 짧은 순간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며 감동을 받는 순간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오늘도 성당 가느냐며 구박할 때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힘든 일이 생겨 주님께 기도해야 할 때에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 ‘사도’(使徒, apostolus)라는 말은파견된 자’, ‘사자’(使者)라는 뜻입니다. 이 열두 사도를 보고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이 사도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뜻에서 우리 또한 사도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 또는 국가 대표가 된다고들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만큼 그 나라의 특징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당 울타리에서 나가는 순간 하느님 나라의 대표 선수, 곧 주님의 얼굴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하느님 나라의 대표 선수로서 어느 순간만이 아니라 온 삶으로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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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11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라삐라고 불리는 스승을 택하였고 필요에 따라서 여러 스승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직접 제자들을 선택하시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아 사도로 세우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그들이 자신들의 삶 안에서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들이 체험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뽑으실 때처럼 특별히 중요한 일을 앞두시고는 기도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도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을 뽑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뽑으시어 사도로 준비시키신 다음에 파견하십니다. 준비된 사람들을 뽑아 복음을 전하게 하면 자신의 능력과 공로를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들의 재주나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겠다는 마음과 주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오늘날의 사도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사도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사랑을 전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어넣어 그들이 하느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 사도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따른 신앙인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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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06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묵시록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2,4-5).
세례 때, 아니면 삶의 특별한 순간에 눈물로 주님께 첫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새롭게 나서 이제 다시는 죄에 떨어지지 않고 하느님께만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누구나 한번쯤 탕자인 작은아들처럼 자신을 휘감는 유혹 속에 추락하는 경험을 했을 수 있습니다. 한참을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첫 마음의 자신에서 너무나 멀어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밤새 깊이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변덕스럽고 나약한 것이 사람임을 잘 아시기에, 깊은 기도 속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선택받은 자로서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부름을 받았습니다. 신앙인으로, 교회의 봉사자로, 우리 삶 깊은 곳에서 운명처럼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소(聖召)의 완성은 미래의 새로운 모습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 여기 있습니다!” 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주님을 따르겠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다짐했던 그첫 마음을 찾아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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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07)


주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기도하시는 이유는 곧 당신께서 하실 일에 참여시킬 일꾼을 선택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일꾼들은 곧 주님의 형제요, 친구요, 가족이 됩니다. 사도로 뽑힌 열두 명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원형)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인 사도들은 그만한 자격을 갖추었거나, 뛰어난 덕행이나 신심을 가졌기 때문에 선발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평범한 보통 사람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그들은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부를 추구하려고 주님을 따라나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주님 안에서 살고자 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께서 부르셨고, 주님을 따르고자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하여 세상에 파견을 받는 주님의 일꾼, 사도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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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08)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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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09)
(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뽑으신 열두 사도의 명단이 나옵니다. 자격을 모두 갖추었거나 뛰어나서 뽑힌 사도는 없습니다. 모두가 평범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선택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축일은 평범한 사람들의 축일입니다. 보통 사람이지만 주님께서 뽑으신 이들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우리 역시 평범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감사하는 삶이 먼저입니다. 학생들에게 감사하는 교사는 어긋나지 않습니다. 국민에게 감사하는 정치인은 거만하지 않습니다. 교우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성직자는 목에 힘을 주지 않습니다. 사도들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우들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님 앞에서 업적이 무슨 소용이 있을는지요?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남기면 됩니다. 제자들 가운데 기록이 남아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정도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그저 이름만 전해질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존경받고 있습니다.
업적과 이름을 남기는 데 매달리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입니다. 많은 것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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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1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의 선택을 앞두시고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뽑힌 이들의 면모는 결코 출중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이런 사람들을 뽑으시려고 밤새 기도하셨을까?’ 하는 느낌마저 가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제자 중에는 자신에게 등을 돌릴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면면은 참으로 미천하였습니다. 인간적 안목으로 볼 때 대부분 부족한 이들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뛰어난 인물이 분명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이들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것도 밤새워 기도하신 뒤에 뽑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인간적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 부족하기만 해도 그분께서 보시기에는 넉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갈수록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세속화되고, 세상 잣대로만 판단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워 기도하신 뒤에 뽑았으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상 기준을 헤아립니다. 선택의 첫 기준은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뽑는 이든 뽑히는 이든 기도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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