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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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09-19 | 조회수966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2017년 9월 19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제1독서 1티모 3,1-13 사랑하는 그대여, 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 직분을 맡고 싶어 한다면 훌륭한 직무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할 줄 알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손님을 잘 대접하고 또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3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 관대하고 온순하고 돈 욕심이 없으며 4 자기 집안을 잘 이끌고 아주 품위 있게 자녀들을 순종시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교만해져서 악마가 받는 심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7 또한 바깥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방을 받거나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습니다. 품위가 있어야 하고,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며, 술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 9 그리고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10 또 그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나서 흠잡을 데가 없는 경우에만 봉사직을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품위가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알고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이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3 사실 봉사직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들은 좋은 명성을 얻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더욱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복음 루카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 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초등학생 때를 떠올려보면 제 자신이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항상 친구들이 방과 후에는 함께 모여서 놀았던 기억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반장, 부반장 선거 때에도 늘 제 이름이 나올 정도였던 것을 생각해보니, 아이들로부터 관심 밖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요. 그런데 한 친구가 저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늘 함께 하려했고, 친구들 배려를 많이 했었어.” 제게는 없습니다. 기억이 있다면 집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했던 것이었지요. 물론 친구들에 대한 특별한 의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단지 그저 친구들과 함께 하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은 저를 좋게 기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었지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함께 하지 못해서 지금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외로워 슬퍼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드려줄 수 있는 위로를 전하는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과 별로 관계없다면 그냥 외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복잡한 일에 끼어들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만큼 함께 하는 것을 외면하는 지금의 사회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모습을 주님께서는 좋아하실까요? 슬픔이 나옵니다. 죽은 사람이 과부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은 그 과부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일하고 의지하고 함께 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도 큰 슬픔이지만, 더군다나 당시에는 과부 혼자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슬픔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분명히 당신과 별 연관이 없는 사람이고, 더군다나 예수님의 부활을 아직 세상에 알릴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계셔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울음에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주십니다.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역시 어렵고 힘든 이들과 함께 하시면서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기억하고 또한 우리 역시 따라야 합니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과도 함께 할 수 있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커다란 은총 가운데에 자리할 수 있습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함께 웃어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 울 것이다. (엘라 휄러 월콕스) 나인의 과부 아들 소생. "불평? 노력!" (‘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청년들에게 강의한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 한 청년이 한국엔 위대한 인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말했습니다.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계몽되어서 민족을 이끌고 일깨울만한 지도자가 어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네를 비롯한 모든 청년들이 인물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네. 자네는 민족을 이끌만한 인물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가? 인물이 없음을 불평만 하고, 인물이 되려고 노력은 하 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인물이 없다고 탄식하기 전에 먼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게.” 남에게 던지고, 대인(大人)은 탓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고 합니다. 불만할 상황이 많지만 그럴 때 남 탓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남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길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십니까?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불만으로 문제점만 많이 만드는 길을 도산 안창호 선생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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