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마리아 우리 신앙의 어머님 /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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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7-09-26 | 조회수93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왜 살며 지금의 삶은? 가끔은 이런 질문을 떫게 여기면서 그 답변을 피하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답은 있어야 삶이 분명해질 게다. 그 답변 가운데 하나는 분명 가족이 걸린다. 배우자와 자녀, 부모 형제 때문에 산단다. 그렇다. 가족이라는 인연만큼 소중한 건 이 세상에는 없다. 그들과 기쁨으로 사는 게 삶에서는 정말 중요할 게다. 그렇지 못하면 주님 개입을 청해야만 하리라. 그 기쁨은 ‘주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은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님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축제가 끝나고 사흘이 되어서야 당신을 찾으신 부모님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라며 부모님을 쾌나 섭섭히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이는 하느님 뜻을 따르려면 혈육의 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걸 이미 소시 적부터 예고하신 거다. 지금 예수님은 그때 그 모습이시다. 아들이 보고 싶어 왔으나 그분께서는 만나려 하지 않고,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다.’라고 냉정히 말씀하신다. 이런 예수님께 성모님은 그 옛날 그 섭섭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셨는지도 모를게다.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가 되는 이는 누구일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라고 단언하신다. 육적인 어머니와 형제들보다 영적인 가족 관계를 바라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먼저 떠나는 불효자가 아닌, 성모님을 혈육을 넘는 진정한 신앙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 혈육에만 매달려서 그 큰 하느님 뜻을 모르시면 어떻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육정에 매인 게 아닌 하느님과의 뜻을 이루려는 관계임을 분명히 보이셨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해타산에만 젖는 안타까운 가족관계를 주님 말씀으로 다져진 찐한 혈육의 ‘참 가족’으로 거듭나야만 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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