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7. 아버지의 선하신 뜻-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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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10-07 | 조회수1,31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루카 10,17-24(연중 26 토)
오늘 <복음>은 파견 받았던 일흔 두 “제자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말하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드리는 감사기도요 찬미기도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20,21)
이는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니 기도에서처럼, “아버지의 뜻”과의 친교와 일치를 나타냅니다. 그렇지만,겟세마니에서의 기도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마태 26,42)라는 수난의 길을 앞두고 드리는 순명과 의탁의 기도라면, 여기서는“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라는 확신에 찬 감사와 찬미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마니피캇”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루카 1,47)라고 기뻐 찬미하는 성모님의 노래와 같습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께서는 파견된 제자들, 곧 철부지들에게 드러내주심에 “감사를 드리십니다.” 여기서“감사”(?ξομολο-γουμα?)의 원어의 뜻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감격스런 찬양의 고백’을 뜻한다고 합니다. 곧 “아버지의 뜻”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동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슬기롭다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완전한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의 감격스런 고백과 탄성은 ‘히브리인들의 축복기도의 전형적인 방식’(berakah)을 통해 표현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 작은이들, 곧 제자들에게는 “이것들”(ταυτα)을 드러내 보이시기 때문에 감사를 드립니다. 곧 전도된 상황이-(곧 슬기롭다는 이들의 무지와 철부지들의 인식이)-“아버지의 선하신 뜻”(ευδωκια)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음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요, 하느님 구원의 이루심을 의미합니다. 곧 잘난 체 한 이들이(곧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고을들이) 창피를 당한 반면에, 기뻐하며 돌아온 철부지들 곧 제자들을 통해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아들에게 넘겨주셨음을 선언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루카 10,22)
그렇습니다. 오로지 아드님이신 예수님만이 아시며,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이들이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은 결코 제자들의 지혜나 슬기로 알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해 드러내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신다.’해서, 모두가 알게 되거나, 모두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라야 알아듣고, 또한 받아들이는 만큼만 알아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게 된 제자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곧 예수님의 기쁨인 “하느님의 뜻”의 이루어짐이 제자들에 대한 행복선언으로 드러납니다. “너희가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들은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 23)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계시를 받은 복된 이들이요 행운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이들이 보고자 했지만 보지 못했던 것을 그들에게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부지들, 작은이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고, 슬기롭다는 이들, 영리한 자들에게는 감추시는 “아버지의 뜻”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에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로 감격스런 탄성과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곧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믿음과 흠숭으로 고백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를 확신하고 지지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당신 어머니처럼, 구원과 자비를 입은 같은 경험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찬가”(마니피캇)을 불러봅니다. “그분(아버지)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1,51-5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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